▲2012년 12월 16일 오후 여의도 KBS에서 열린 사회·교육·과학·문화·여성 분야 후보자 초청 3차 토론회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보다 앞서 도착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박 후보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에 문 후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불법단체도 아닌 전교조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한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기에 나 또한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전교조를 싫어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동안 전교조가 해온 일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9년 '참교육'의 깃발을 들고 출범한 전교조는 무엇보다도 거짓 교육을 청산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거짓 교육으로 학생들을 바른 삶으로 이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교조가 탄생하기 전의 모든 교육이 거짓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전교조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일들이 참이 아니듯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거짓 교육의 최종 피해자가 학생들이며, 그것을 여실히 알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침묵해야 했고, 혹은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던 '굴종의 삶'을 더 이상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과 의지였다. 전교조의 존재적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겠다.
'전교조 27년, 그리고 그 후를 위하여'란 부제가 붙어 있는 <다시, 닫힌 교문을 열며>(양철북)를 읽었다. 이 책은 전교조가 기획하고 전교조 교사인 윤지형이 집필한 전교조 이야기다. 그는 책머리에서 "누군가 은연중 상상하고 바랄지도 모르는 '하나의' 전교조란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그 이유가 뭘까?
"하나는 추상이고 관념이다. 하나의 전교조 혹은 두 갈래의 전교조가 아니라 무지개 일곱 빛깔의 전교조가 삼천리 방방곡곡,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할 수 있다. 때론 빽빽이 함께, 때론 드문드문 홀로인 듯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묻는다. 나는 왜 전교조를 이야기 하고 싶은가? 그건 한 마디로, 선생 노릇한 지 30년이 넘는 동안 내게 전교조는 참 괜찮은, 살아 볼만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건 또 왜 그러냐고 누군가 물으신다면 나는 또한 단박에 대답할 수 있다. 전교조 동네에서 나는 정말 멋진, 훌륭한, 아름다운, 헌신적인 선생님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그렇다고 그는 무조건 전교조, 혹은 전교조 교사들을 두둔하지 않는다. 그도 전교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배 권력의 집요한 '전교조 죽이기'나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막무가내 험악한 비방과 매도를 일단 옆으로 밀쳐 두면 좀 제대로 하라는 회초리로서의 전교조 안팎의 비판이 내 앞을 성큼 가로 막는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학교가 깡그리 망하지 않는 한은 내일도 존재할, 아니 존재해야 마땅한 그런 선생님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그의 다음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한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면 거기 전교조는 꽃처럼 피어난다. 그 행복의 가능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한 전교조는 거기 살아 있다. 그러나 그 교사가 어느 날 경쟁 교육이나 수월성 교육 체제의 옹호자로 돌아서면 거기 전교조는 사라지고 없다. 혹은 한 교사가 권력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강행에 문제의식을 가진다면 거기 전교조는 꽃피어 있다. 그러나 그 교사가 권력에 순응하거나 동조마저 하게 되면 그 순간 전교조는 시든 꽃이 되어 땅에 떨어지고 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나는 2016년 2월 정년퇴임을 하였다. 나에게 전교조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전교조는 '사랑'이었노라고. 그 사랑은 내가 매일 같이 교단에서 만난 '내 학교 내 아이들'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전교조를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눈 내리는 새벽, 1986년 1월 5일 한 소녀가 죽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렇다. 한 소녀가 죽었다. 중학교 3학년생이었다. 아이가 '친구 H'에게 보낸 유서 편지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올 수도 있는 사람인데, 어떨 땐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두들겨 맞았다.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분이 날 15년 동안 키워 준 사랑스런 엄마. 너무나 모순이다. 모순, 세상은 경쟁! 경쟁! 공부! 공부! 아니 대학! 대학! 공부만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가감 없이 말하자면, 나는 눈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성과 감성의 언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전교조 27년의 역사를 촘촘히 기록한 이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해일처럼 일었지만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고 말았다.
이유는? 하나가 아닌 전교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기 위해 애쓴 저자의 노고를 아둔한 내 글 솜씨로 짧은 지면에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저자 윤지형의 전교조와 교육에 대한 순정한 마음까지 비껴갈 수는 없었다.
저자 윤지형은 2016년 현재 법외노조의 처지에 내몰려 있는 전교조를 '문제적'이라고 말한다. 왜 문제적인가? "우선 숙명과도 같은 지배 권력과의 불화부터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그는 술회한다. 그러면서 "권력은 속성상 교육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포기한 적이 없는데 반해, 전교조는 교육의 자주성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라는 말을 덧붙인다. 전교조는 출범하면서 '참교육 실천'을 선언한 바 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문제적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참된 교사, 참된 교육, 참된 사랑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 선언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문제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사들의 순정한 양심에서 터져 나온 이 같은 자기반성적 선언은 뜨거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최소한의 마땅한 응답이었지만, 곧바로 전교조의 존재이유가 되었고, 동시에 양날의 칼과도 같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바깥의 거짓 교사, 거짓 교육, 거짓 사랑을 치는 칼이면서 내 안의 그것들도 가차 없이 쳐야하는 양날의 칼 말이다. 문제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 문제적인 거짓 교육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그것을 청산하기 위한 목숨을 건 투쟁 또한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론 지금의 전교조가 과연 그 일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성찰은 필수불가결하다 할 것이다. 그동안 전교조가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구어낸 눈물겨운 열매들을 상기한다면 환골탈태와 분골쇄신의 정신으로 더욱 정진함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이 책은 전교조의 역사와 지향과 마음 혹은 전교조 교사들의 삶을 열쇠 말 두 개로 풀고 있다. '투쟁'과 '공부와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
1부 '투쟁의 길'은 출범 전야에서부터 27년 항해까지의 역사와 사학 정상화, 교육대개혁과 공교육 정상화 등 전교조가 교육과 교사를 지배하려는 권력과 싸워 온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의 교사, 민족의 교사, 국민의 교사로서 말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부터 비정상 학교의 정상화 투쟁, 비민주적 학교 현장의 민주화 투쟁, 교육과 관련한 법과 제도의 개선 투쟁까지를 두루 담고 있다.
2부 '공부와 실천의 길'은 대안 교과서, 전교조신문과 <우리교육>, 분과 활동과 참실연수 등 공부와 실천에 대한 내용으로 전교조 교사들의 공부를 향한 부단한 열정과 그 풍성한 결실들 그리고 협력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교과별, 주제별로 모인 교사들의 공부와 교실에서 한 실천은 그야말로 하고 싶어서 즐겁게 해 온 것이니만큼 그 의미가 성과는 더욱 빛난다. 현장 교사들의 애환과 삶의 향기가 묻어있는 교단일기와 혁신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주목을 요한다. 그 생생하고 구체적인 현장의 이야기를 다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전교조 교사 식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