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주릉필례약수터입구에서 오색령(한계령으로 도로표지판엔 안내되어 있음) 방향으로 향하면 곧장 정면으로 나타났다가 이내 오른쪽으로 자리하는 풍경이다. 바위와 그 사이로 형성된 숲은 잘 다듬어진 정원을 보는 듯하다.
정덕수
눈이 퍼부을 때는 사실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 없다. 물론 렌즈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도 막막하기 그지없는 풍경 외엔 폭설 속에서는 먼 거리를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런 까닭에 폭설 속에 서면 더 많은 기대와 아득한 세계로 마음이 이동하나 보다. 마찬가지로 오색령에서도 눈이 그치고 적당히 구름층이 얇아지면서부터 환상적인 설경을 만날 수 있다.
필례약수터로 가는 길에서 빠져나와 오색령 방향으로 접어들면 먼저 거대한 화강암과 어우러진 겨울나무에 얹힌 눈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직 먼데 하늘은 열리지 않았어도 보이는 그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뛰게 만드는 장면이다.
왼쪽의 능선을 따라 철철이 많은 이들이 오르거나 내려온다. 백두대간에서 서북주릉으로 일컬어지는 오색령과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1981년 10월 3일 이렇게 이 길에 대해 표현했다.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안개구름에 길을 잃고안개구름에 흠씬 젖어오늘 하루가 아니라내 일생 고스란히천지창조 전의 혼돈혼돈 중에 헤매일지삼만 육천 오백 날을 딛고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담배 연기 빛 푸른 별은 돋을까'
한계령 노래는 알아도 그 노래가 된 원작 '한계령에서'의 1연이란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노래가 내가 쓴 시의 2연과 3연 그리고 5연을 부분 선택하여 버무려 놓았기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만약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노래가 만들어졌다면 전혀 달랐을 일이지만 어쨌거나 처음부터 1연과 4연은 통째 버려졌다.
'한계령'은 1984년 10월 5일 양희은의 앨범으로 발표되었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조용필의 8집(1985년 11월 15일)에 발매됐다. 당시까지 대중가요에 없던 긴 트랙과 파격적 가사, 멜로디로 조용필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다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여담이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찬찬히 뜯어봤는데 시의 구성이나 길이가 참으로 절묘하게 닮았다. 이 부분은 '한계령에서'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완전한 형태로 놓고 직접 비교해보면 확인된다. 뭐 그렇다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쓴 김희갑 선생께서 '한계령에서'를 어딘가에서 보고 비슷한 얼개로 전혀 다른 작품을 썼다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