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바위글씨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사기막골삼거리에서 사기막골로 향하는 길가에 있다. 현재 청담동은 군부대가 위치한 출입금지 구역이다.
이종헌
남으로 인수봉과 백운대, 북으로 상장능선이 골짜기를 감싼 청담동선인들의 유산기를 통해 청담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물론 강남에 있는 그 청담동은 아니다. 북한산 자락 깊숙이 숨어 아직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금단의 땅, 국립공원 내에 있으면서도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어 일반인 출입이 어려운 이곳에는 조선 헌종 연간에 독락재 구시경이 세운 청담초당이 있었고, 또 그보다 약 40년 후인 숙종 때 수은 홍석보가 세운 와운루가 있었다.
남으로는 인수봉과 백운대가 우뚝 솟아있고, 북으로는 상장능선이 여인네의 치마폭처럼 골짜기를 감싸 안았다. 서쪽으로는 노고산이 창릉천을 끼고 담장처럼 길게 둘러서있는 청담동은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북한산성의 배후로서 지리적인 중요성도 매우 높았다.
조선 숙종 38년(1712), 북한산성 축성이 끝난 직후 홍양영장(洪陽營將) 윤제만(尹濟萬)은 그의 상소문에서, 대서문 밖에 남으로 삼백여 보의 성을 쌓아 남문을 삼고, 달이치(達伊峙)의 약간 낮은 곳에 백여 보의 성을 쌓아 북문으로 삼으면 주위 십여 리의 철옹성을 구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달이치는 오늘날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橋峴里)의 솔고개이다. 위로는 청담동이 있어 수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땅이 넓고 지세가 평탄하여 북한산성의 취약점들을 보충할 수 있으니, 이곳을 외성으로 삼아 내외가 호응해야만 북한산성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이다.
윤제만의 상소는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북한산성의 배후로서 청담동 일원이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제시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에도 이곳에는 많은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청담동이라는 지명은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렵다. 본래 청담동이라 함은 솔고개 아래를 흐르는 창릉천의 상류를 일컫는 명칭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곳은 사기막골, 또는 효자리계곡으로 불릴 뿐이다.
비록 사기막골 입구 한편에 능성구씨 문중에서 새겨놓은 <청담동>이라는 바위글씨가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한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곳을 사기막골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예전에 사기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있어서 그렇다는 설도 있고, 또 절터라는 뜻을 가진 한자말 '사기(寺基)'가 그렇게 변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기그릇 파편이 많이 발견되고, 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절터들을 볼 수 있으니 선뜻 어느 한가지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도성 인근 최고의 명승으로 이름을 떨친 와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