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숲명상농원의 닭님들, 이렇게 방사한 닭들은 면역성이 강하다. AI 조류독감에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다.
박도
교과서와 참고서만 매달린 학습
홍일선 시인 부부가 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몇 해 전 경기도 용인에 사는 이상권 작가(소설)가 집에서 기르던 토종닭 일부를 AI 조류독감 여파로 시청 직원에게 빼앗겨 모두 살처분 당했다. 이 작가는 자기가 애지중지 기르던 닭이 더 이상 살처분 당하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암탉 네 마리와 수탉 한 마리를 몰래 차에 싣고 와서 여강 도리마을에 사는 홍 시인에게 맡겼다. 그래서 홍 시인 부부는 닭과 더불어 살게 됐다.
이즈음도 홍 시인 부부는 닭님을 하늘처럼 섬기며 그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는 닭님에게 사료가 아닌 밥을 주며, 낮 시간에는 우리에 가두어 기르지 않고 온통 풀어놓고 있다. 그래서 홍 시인 닭님들은 밭에서 배추잎도 뜯어먹고, 도랑에서 미꾸라지도 잡아먹으며, 산과 들판을 마냥 쏘다니며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사실 지난날 우리네 조상들은 이렇게 닭과 소와 돼지를 기르며 그들과 더불어 살았다.
그런데 그 언제부턴가 닭과 돼지, 소들은 공장의 공산품처럼 대량으로 마구 쏟아지고 있다. 몇 해 전 서울 근교의 양계장과 양돈장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100평 남짓한 양계장에서는 수천 마리의 닭들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철망으로 엮은 닭장은 연립주택 마냥 2~3층으로 촘촘히 이어져 있었다. 그 크기는 쥐덫보다 조금 더 컸다. 철망 속의 닭은 180도 회전조차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주인은 닭장의 공간이 넓으면 운동량이 많아져 산란율이 감소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닭의 부리는 죄다 끝부분을 펜치로 잘라 뭉텅했다. 원형대로 두면 닭이 사료를 먹을 때 밖으로 튀겨 낭비가 심하기 때문이란다.
계사 천장에는 전등들이 촘촘히 켜 있었다. 닭들이 밤에도 자지 않고 사료를 먹어야 산란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라 그런다고 했다. 닭들은 매일매일 산란이 체크되고, 산란율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폐계 처리된다고 한다.
양돈장의 경우도 양계장과 오십보백보였다. 돼지우리 역시 공간이 좁았다. 운동량이 많아지면 살이 붙지 않기 때문이란다. 100근이 넘는 어미돼지는 제 몸뚱이를 주체할 수 없어 누워 먹고 누운 채 지내고 있었다. 그 돼지는 먹는 사료값에 견줘 더 이상 체중이 늘어나지 않으면 그 역시 가차 없이 도살장 행이었다.
나는 그 양계장과 양돈장을 둘러보면서 오늘의 우리 교육현장이 겹쳐졌다. 학생들은 이른 꼭두새벽부터 푸석푸석한 얼굴로 등교하여 빡빡한 학습 일과 속에 보낸다. 그들은 방과 후에도 밤늦도록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타율학습으로, 좁은 교실에 앉아 오직 교과서와 참고서만 달달 외고 있다. 그들의 파리한 모습은 어쩌면 양계장의 닭, 양돈장의 돼지 같고, 떡만 잔뜩 먹은 미운 자식 모습 같기만 하다.
오늘의 중고, 특히 고교의 획일적·미시적 입시 중심의 능률 위주 교육은 축산농가의 가축 사육을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런 고도의 능률 위주 교육은 점차 인간성을 상실케 하고, 창의적인 인물을 키우지 못하기 마련이다. 결국은 조류독감에 속수무책인 양계장의 닭처럼 면역성이 부족한 나약한 인간만 양산하는 잘못된 교육현장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떡만 잔뜩 먹여주는 오직 입시 위주의 교육, 그것도 한꺼번에 대량으로 먹여주는 기형적인 교육은 AI 조류독감에 속수무책인 가축과 같아 몹시 안타깝다. 이렇게 자란 학생들은 조그만 고난과 시련에도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나약한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오늘의 능률 위주 입시 교육은 나약한 인간만 양산하는 것 같아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