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와 가족 잃었지만..." 김수환 추기경도 놀란 사람

나눔의 기쁨 아는 이들이 활짝 웃는 곳... 우총평 원장님과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등록 2016.12.24 11:06수정 2016.12.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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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이면서 지적장애인들을 돌보고 계시는 우총평원장 ⓒ 이안수


#1. 지적장애인과 함께 사는 지체장애인
 
헤이리에서 멀지 않은 탄현면 관내에 지적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집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네집'입니다.
 
놀라운 것은 가족도 그리고 이웃들도 포기한 사고무친의 정신지체인들을 거두고 계신 분은 스스로도 두 다리가 없는 1급 지체장애인입니다. 76세의 우총평 원장님이십니다.
 
그분은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명상록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책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인데, 두 다리가 성한 나보다 더 바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불우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총평이란 사람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알리던 선지자 이사야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듯합니다.

두 다리가 없어서 자신은 아무리 추운 한겨울에도 다리가 시리지 않고, 날이 궂어도 관절통이 없고 한여름에는 무좀이 걸릴 일이 전혀 없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는 항시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항시 주님을 곁에 모시고 싶습니다"라는 제자의 말에 주님은 "네 이웃의 고통을 받고 버림받은 자가 바로 나로다"하면 자신을 드러냈지만, 아직도 고통 속에 이웃을 외면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그는 주님의 진정한 심부름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감내할 수 없었던 고통의 심연 속에서 눈부신 아름다움을 발하는 그의 용기와 불굴의 정신은 우리들의 귀감, 바로 그 자체인 것입니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김수환)

우총평 원장님은 버거씨병으로 8번의 대수술을 받고 허리 아래 두 다리를 완전히 잃은 분입니다. 첫 수술대에서 발목을 자르는 것을 시작으로 수술대를 오를 때마다 잘라낸 것이 넓적다리까지 잘린 지금의 모습입니다. 4년 전에도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습니다. 대퇴부의 뼈가 자라서 살을 뚫고 나오니 다시 4cm 쯤의 뼈를 잘라야 했습니다. 
 

프란체스코네집에 함께하는 짧은 시간에도 그분들이 얼마나 사람과의 교류를 그리워하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 이안수


버거씨병은 동맥의 염증으로 혈류의 흐름에 문제가 생긴 질병으로 폐쇄성 혈전혈관염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혈관의 폐쇄로 인해 사지 말단이 괴사해 심할 경우 절단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을 떠난 것은 두 다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 그리고 희망과 의욕도 함께 떠났습니다. 그저 행려자의 하루하루를 살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목숨을 버리기는 어려워 서울 둔촌동 '애덕의집'이라는 천주교 복지시설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얻고 다시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주친 정신지체장애인과 사고무친의 노인. 그때 그는 그들과 비교해 자신에게는 여전히 온전한 정신과 젊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일깨운 것은 '연민'이었습니다. 그는 구걸과 길거리 장사로 정신지체장애인과 노인들을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더 많은 장애인들이 우총평 원장님을 찾아왔고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굶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천국은 온전한 육신을 가진 사람만의 것도, 굶을 걱정 없는 부자만의 것도 아님을 그 시간 속에서 알았습니다.
 
단칸방 하나로 시작된 멸시받던 자들의 천국은 전국 다섯 개의 복지시설로 늘어났습니다.
 
'하남 작은프란치스코네집(1987년 설립,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집)', '제천 살레시오의집(1989년 설립, 지적, 지체 남녀 장애인을 위한 집)', '제주 살레시오의집(1992년 설립, 여성 장애인의 집)', '김포 프란치스코네집(1992년 설립, 남성 장애인을 위한 집)', '파주 프란치스코네집(2001년 설립, 지적장애인의 집)이 그것입니다.
 
우 원장님은 한 시설이 안정되면 그것을 천주교 측에 넘기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위 다섯 개의 복지지설입니다.


#2. "그냥 송금할까요?"...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헤이리 주민 각자의 삶도 짬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늘 그분들을 방문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일터에서 돌아온 퇴근 후이곤 합니다. 그때쯤은 프란치스코네집의 식구들은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이곤 하지요. ⓒ 이안수


헤이리 주민들은 우리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을 위해 거둔 작은 돈의 일부를 떼어 파주 프란치스코네집에 매달 쌀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소한 굶는 걱정은 없어야겠다는 뜻의 반영입니다.
 
신선한 쌀을 먹을 수 있도록 매월 새로 도정한 한달치씩을 배달토록 조치를 해오고 있습니다. 쌀을 받은 날은 어김없이 우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쌀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제게 항상 헌신과 섬김의 기적을 일깨우는 죽비소리로 들립니다. 매년 연말에는 주민들의 온정을 담은 작은 봉투를 전하곤 했습니다.
 
지난 15일, 시간이 허락되는 주민회 임원 몇 분과 '프란치스코네집' 집을 찾아갔습니다. 들길을 지나고 고개를 두 번 넘어가면 산 아래 외진 곳에 있는 집입니다. 이 집이 이렇듯 후미진 곳에 있는 이유는 장애인의 집이 자신의 동네에 있는 것을 꺼리는 도시 사람들의 민원을 피해온 탓입니다. 차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얇은 봉투를 드리겠다고 이렇게 찾아뵙는 것이 오히려 민폐인 것 같아요. 그러니 이번에는 계좌번호를 물어 송금해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다른 분이 말을 이었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가면 귤 상자까지 내어주어서 오히려 미안하더라고요."
 
저도 내심 이렇게 직접 찾아뵙는 것이 그분들께 불편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우리가 당도하자 저녁을 먹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집식구들이 큰 미소로 맞았습니다. 원장님께 슬쩍 봉투를 전하고 함께 거실에 빙 둘러앉았습니다. 우 원장님과 함께 생활하고 계신 분들은 40대 후반부터 70대 중반까지 모두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분들입니다.
 

얇은 봉투를 내는 손이 늘 부끄럽습니다. ⓒ 이안수


제 옆에 앉은 분이 저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말했습니다.
 
"나 아버지 죽었어."


저는 무의무탁이었던 이분이 마침내 가족을 찾았고 최근 아버지가 별세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위로할 말을 더듬거리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저와 같은 처지군요. 저도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 짐작이 돼요."
 
그러자 항상 그분들과 밤낮의 일상을 함께하시는 데메뜨리아 사회복지사께서 말했습니다.
 
"이분은 올해 57세이신데(사실은 이 시설에 함께하기 전에는 길거리의 삶을 살았던터라 확실한 기록이 없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나이는 상황을 종합해서 미루어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손님이 오시면 항상 같은 말씀을 하세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은 아마 수십 년 전일 거예요."
 
이 말을 들은 그분은 심각했던 표정을 금방 바꾸며 활짝 웃었습니다.
 
"푸하하하~"
 
또 다른 분이 문 앞에 둔 귤 두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가져가세요."
 

작은 귤 밭이 딸린 제주 살레시오의집에서 보내준 귤을 나주어 주는 프란치스코네집 식구들. 귤 박스를 건넬 때 그들의 표정은 가장 밝습니다. 나누는 기쁨은 형언할 수 없는 본능인가 봅니다. ⓒ 이안수


우 원장님께서 여전히 관리를 책임지고 계신 제주도의 '살레시오의집'에서 보내주신 것 중의 일부일 것입니다. 짧은 만남을 마치고 자리에 일어서자 그 분이 귤 두 박스를 번쩍 들어 차에 옮겨 실었습니다. 나누는 것의 기쁨을 본능적으로 아는 분임이 분명했습니다.
 
"다음 주에 있을 주민 송년회 때 주민들과 함께 나누어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우 원장님께 전화로 듣는 말씀인 '고맙습니다'를 저도 할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우원장님은 8번의 수술을 받았고, 그 모든 수술은 점점 더 위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이었습니다. ⓒ 이안수


돌아오는 길, 차 속에서 바뀐 마음을 말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계좌번호를 묻지 않으셨으니 모두 같은 마음이지요? 봉투가 얇아도 매년 와야겠어요. 저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세요. 저분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봉투가 아니라 만남이에요."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책,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에는 인도 빈민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임종을 돕는 '죽음의 집' 테레사 수녀님의 얘기가 실려있습니다.
 
어느 신문기자가 마더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행려병자 수용소를 찾아왔습니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병자들이 간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용소 밖의 거리에도 오갈 데 없는 환자들이 여기저기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에 충격을 받은 기자는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 당신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리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데, 겨우 몇백 명을 도와준다고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마더 테레사는 조용히 돌아서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다만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티됩니다.
#우총평 #프란치스코네집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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