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조퇴 2번... 그가 쫓겨난 이유였다

[노동위원회 해고구제신청 사례⑧] 경비원에게 '갑질'하는 입주자대표자회의... 주민들 함께 맞서야

등록 2016.12.21 12:15수정 2016.12.2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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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기사 내 언급된 사례와는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기사 내 언급된 사례와는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이민선

"사장님, 그러면 사장님은 회사 생활 하시면서 조퇴·휴가 이런거 안 내세요? 그러면 경비 아저씨들은 몸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하나요?"

보다 못한 내 질문에 용역업체 사장은 "아니, 조퇴를 할 수는 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갑'인 입주자대표자회의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하니 '을'의 위치에 있는 자신을 어쩔 수 없다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정당한 조퇴"였는데... '막대한 지장' 덤터기

경기도 의왕시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김천일(가명, 남, 67)씨는 어느 날 기존 근무지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경기도 화성시의 W아파트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김씨에게 전보를 명령한 사유는 단 하나였다.

"귀사와 체결한 경비용역계약서 제18조 제1항에 의거 일부 직원의 관리주체의 지시감독 위반과 근로계약서에 의한 근무시간 중 무단이탈(조기퇴근 2~3회) 등 근무규정 위반으로 당 아파트 관리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중략) 해당 직원의 순환조치를 요청드립니다"

김씨는 조기퇴근 한 것은 사실이나 반장에게 허락을 받고 정당하게 이뤄진 조퇴라고 했다. 2년을 일하는 동안 몸이 아파서 딱 두 번 조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근무규정 위반'이라는 입주자대표회의의 통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경비원들이 조퇴나 휴가를 내야하는 경우 소정의 '서류'가 있냐는 질문에 "그런 건 없다"고 말했다.

비용절감 이유로 해고 일삼는 아파트대표자회의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아파트 경비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아파트 경비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pixabay

사실 아파트경비원의 잦은 계약해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7월 충남 예산읍의 A아파트에서 주민들이 "경비실 통합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입주자대표회의 측에 반대해 "우리가 1만 원 아끼자고 경비아저씨들을 해고할 수 없다"라고 맞섰고, 같은 해 8월에 서울 강서구 D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보안시스템을 들이고 경비원 44명을 전원해고하겠다는 아파트대표회의게 맞서 법적소송까지 벌인 결과 공사를 무효화시키고 경비원들의 고용을 지켜낸 사례가 있었다.

이런 일들을 계기로 지금까지 어쩔 수 없는 듯 보이거나 비용절감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던 아파트경비원의 해고가 '주민들의 따뜻한 시선과 노력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졌고, 지난주 한 공중파의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초등학생이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의 해고를 막아주세요"라고 대자보를 써붙여 주민 70%의 반대로 해고를 막아낸 사연으로까지 소개되기도 했다.


단순한 비용절감을 이유로 또는 무분별한 해고를 일삼는 그간의 아파트대표자회의 전횡을 막아내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주머니속을 채우기 위한 전횡을 막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아파트주민회의의 갑질, 또 그 갑질을 당연히 여기던 그간의 관행을 함께 막아내고, 누구가의 '해고'에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행히 김씨의 이번 사건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보이므로 구제함' 판정을 받았다. ▲ 김씨의 근로계약서에 근무지가 '경기도 의왕시 S아파트'로 특정지어진 점 ▲ 전보지역이 김씨의 집에서 1시간 50분 거리로 생활상의 불이익이 초래되는 점 등이 구제 판정의 이유였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심판회의 구제사건을 통해 노동자들이 최소한 해고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길 바라고, 조금이나마 해고가 줄어드는 세상을 위해 심판회의 사례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 #해고구제신청 #경비원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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