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단에 서서 발표하는 스와하라 타케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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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는 "일본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유는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은 평화헌법을 만들어 전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1950년대 정부는 이에 역행하는 정책을 폈다. 재무장 움직임. 일본과 미국은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무장안을 통과시켰다. 노부스께 총리는 책임을 지고 총리에서 물러나는 제스쳐를 보였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때 "큰 공통의 목적을 상실했다"고 다케시는 들려준다. "일본 사람들은 이후 차츰 사회운동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이케다 하야토 후임 총리가 '정치계절에서 경제계절로'라는 슬로건으로 일본인의 관심사항을 경제로 바꿨다.
그리고 고도경제성장을 이뤘다. 사람들은 정치에 점점 더 무관심해졌다. 일본 사람들은 시위, 집회 파업은 위험하다고 여겼다. 사회운동은 힘을 잃었다.
일본인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다케시는 "동일본 대지진 원전사고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일본정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지진은 동시에 사회 불안감을 키워 내셔널리즘이 확산되는 계기도 만들었다. 이때 자유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됐다.
다케시는 "착각하지 마라. 자유민주당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다케시는 아베 신조가 "전후 체제에서 탈피해 일본의 내셔널리즘 되찾으려 한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아베 정부는 2013년 특정 비밀보호법을 통해 2014년 이후 재무장을 강화해 나갔기 때문이다.
다케시는 "그전까지 정치에 관여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더 이상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일본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취지로 '사스플(특정비밀보호법에 반대하는 학생의 자발적 모임·SASPL)'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케시는 "이미지 구축을 위해 많은 비용이 필요해 정당들에 부탁해서 이런 어려움 극복했다"며 청년 정치조직으로서 갖는 한계와 이를 뛰어넘는 방법을 동시에 들려준다. 이후 사스플은 '실즈(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 SEALDs)'라는 전국조직의 새 이름을 얻는다.
새 정치문화의 장, 집회에서 자유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