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77대 종손 결혼식 사진
바이두
공자는 중국 산동성 제녕시 곡부에서 태어나고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곡부에는 공자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은데 사람들이 자주 가는 장소는 공묘, 공부, 공림 이렇게 세 곳입니다. 결혼식이 공부(孔府)에서 열렸기에 공부(孔府)를 설명드리겠습니다.
공부(孔府)를 한자로 풀이하면 공자 관청입니다. 공부(孔府)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공부(孔府)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공자의 유학은 한나라 한무제가 '동중서'라는 학자를 기용하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중국 황제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다는 공자의 유학이 너무나 고마웠을 겁니다. 공자의 유학이론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자기 자신이 속해있는 위치를 알고 그에 맞는 사회예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론에 따르면, 황제는 영원히 황제이고, 신하는 영원히 신하이고, 노비는 영원히 노비입니다. 누구도 황제 자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유학 이론을 만든 공자가 너무 고마운 황제는 공자 후손에게 선물을 듬뿍 안겨줍니다. 황제가 공자 후손에게 주는 선물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송나라 황제는 공자 후손에게 엄청난 선물을 줍니다.
송나라 황제는 공자 가문 종손에게 '연성공'이라는 관직을 줍니다. 이 관직을 한국식으로 풀어보면 '영구세습시장' 정도 됩니다. 공자 가문 종손은 성인이 되면, 고향 마을 시장(사또)에 자동으로 임명될 뿐 아니라, 이 시장 관직은 영구적으로 후손에게 세습됩니다. 그러니까 공자 가문 종손은 태어나면서 금수저를 넘어서 다이아몬드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는 거지요.
세월이 지나면서 나라(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국민당 정부)도 바뀌고 수많은 황제가 세워졌지만, 공자 가문 종손은 언제나 영구세습시장 관직을 유지했습니다. 공자 가문이 1000년 동안 영구세습시장 관직을 유지한 시청과 시청관사가 바로 공부(孔府)입니다.
공자 가문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한 가문이 1000년 동안 일정 지역의 시장(사또) 관직을 유지한 경우가 없습니다. 대단한 집안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