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제출하던 날. 군 유족이 국민에게 법안 통과에 함께해 달라고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상만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노래든, 눈물이든 어머니들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하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사연을 말하든, 아니면 노래와 눈물로 말하든, 모든 관객이 넉넉히 안아주실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내 밝아진 어머니들의 얼굴. 그렇게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암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게이트'였습니다. 이 일이 스토리펀딩에 영향을 줄지 몰랐던 것입니다. 애초 펀딩 개시일인 11월 1일, 그날 모든 국민의 관심은 서울중앙지검을 향해 있었습니다. '문제의 인물' 최순실씨가 전날 검찰에 출석했고, 이날 긴급 구속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스토리펀딩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까 고심했습니다. 펀딩을 홍보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였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일주일만 연기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토리펀딩을 담당해 주시는 선생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일주일만 연기해 주실 수 있냐"고 하니 답변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렇게 해 드릴 수는 있는데, 다만 이 일이 1주일 가지고 해결될까요?"불길한 그 분의 우려처럼 일주일 후, 이번에는 상황이 더욱 커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이 불을 지르면서 이번엔 100만 명이 넘는 촛불집회로 이어진 것입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토리펀딩을 시작하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
결국 다시 연기한 때가 12월 1일.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무조건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박근혜의 탄핵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었던 그날 밤. 모든 분들이 탄핵을 위해 애를 쓰는데 이 스토리펀딩을 홍보하는 것이 양심상 옳은 일인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하간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감동적인 하루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성원으로 스토리펀딩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매일 매일 새로운 후원자 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함께하는 분들의 후원으로 매일 매일 새로운 희망이 싹터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감해 주시는 후원자분이 남겨준 댓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동안 내보낸 기사를 본 후 남겨 주신 공감 댓글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글입니다.
'아들이 군에 있습니다. 군대 이야기 나올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다 내 아들 같은데 사고를 당한 부모님들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힘내시고 다 잘 되길 바랍니다.'또 어떤 분은 이런 글을 남겨 주시기도 했습니다.
'남동생 군대 보냈다가 자살 시도했다는 소식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어쩌다 보게된 이 글을 지나칠 수 없어서 후원하고 갑니다.'하지만 공감해 주시는 분과 달리 무턱대고 제 스토리펀딩을 비난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글입니다.
'이 새끼야. 창작 소설을 쓰니? 너 사기꾼으로 보내 버린다. 나 원 어이가 없어서.'솔직히 기분이 좋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이 민주주의 근간이니 또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욕설 글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글은 따로 있습니다. 과거의 일부 사례를 가지고 오늘 이야기한다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당한 일이 아니라고 비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과거의 비극이 오늘 이만큼 바뀔 수 있었다면 그것은 결코 그냥 얻은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군, 엄마를 '미친 여자'로 만들다그 대표적인 일화가 대만에서 있었던 사례입니다. 1995년 6월 15일 중국 바다 위에서 조업을 하던 어부들의 그물에 숨진 군인의 시신이 끌려 올라왔다고 합니다. 숨진 군인의 이름은 '후앙궈장', 대만 국적의 의무복무중 해군 사병이었습니다.
그러자 대만 군 당국은 유족에게 아들의 사망 원인을 자살이라고 통보합니다. 군 복무에 염증을 느낀 그가 바다에 투신하여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군대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후앙궈장의 엄마는 군 당국의 통보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숨진 아들의 두개골에 긴 쇠못이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봐도 타살의 정황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평범한 주부였던 '후앙궈장의 엄마' 첸피에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아들의 의문사를 밝혀달라며 대만 군 당국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왔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