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화재조사관이종인 화재조사관이 화재현장에서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건
- 화재현장 특성상 화재조사관도 화재진압대원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안전과 건강에 위협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장에서 어떤 애로사항이 있으며, 화재조사관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 번째는 인력보강이다. 아무래도 혼자 현장을 조사하다보면 중요한 부분들을 놓칠 개연성이 크다. 또한 화재로 피해를 입은 민원인들을 혼자서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기본적으로 2명이 한 조가 돼서 화재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화재조사 보고기한도 충분한 조사와 검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주어지면 좋겠다.
두 번째는 화재현장 조사에 적합한 기능성 장비개발과 지급이 필요하다고 본다. 화재조사관은 화재현장에 대한 사진촬영과 발굴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화재진압 대원들과는 달리 공기호흡기 착용이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방독마스크나 방진마스크를 착용하는데, 문제는 이 제품들이 모든 유해물질들을 효과적으로 걸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중앙소방학교와 공동으로 화재현장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와 방독.방진마스크 필터의 적응성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특히 포름알데히드는 특정제품의 필터 외에는 걸러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방진마스크를 착용해 왔다.
화재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유해물질에 화재조사관이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은 물론이고, 폐 기능 저하, 진폐증 등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화재현장 조사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안전장비가 개발·보급됐으면 좋겠다."
피해를 입은 민원인의 발화부 변경 요청, 거절했더니 2개월 동안 괴롭혀- 불에 탄 시신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정신적 충격이 대단했을 텐데……"맨 처음 소사체, 즉 불에 탄 시신을 봤을 때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망자는 성인이었는데 팔목과 무릎 이하가 이미 불에 소실된 상태라서 전체적인 신체 사이즈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매우 작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시신을 목격한 이후 한 동안은 트라우마로 남아 힘든 시간도 보냈다. 술을 마시면서 해소해 보려고 노력도 했는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 같았다. 지금은 힘든 일이 생기면 전문가와의 상담, 등산, 드라이브 여행, 명상 등 건강한 여가활동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
-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정도로 좌절했던 경우는 없었나?"지금으로부터 5~6년 전으로 기억한다. 화재로 피해를 입은 한 민원인이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화재가 발생한 지점(발화부)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조사한 사건도 아닐 뿐만 아니라, 발화부를 임의로 바꾸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고 설명을 드렸다.
그때부터 그 사람이 나를 2개월 동안이나 스토커처럼 쫓아다녔다.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다.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시청, 청와대 등 정부기관이란 곳에는 모두 다 악성민원을 제기해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까지 받기도 했다. 화재조사도 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조사까지 받다보니 그때는 솔직히 다른 부서로 보직을 변경할까 고민도 했다."
- 4억이나 되는 배상책임을 진 한 노인의 누명을 벗겨준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무려 2년 동안이나 조사했다고 들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이 사건은 화재 발화부가 바뀌면서 피해자가 갑자기 가해자로 바뀐 사건이었다. 그 당시 피해액이 대략 17억 5천만 원 정도로 기억난다. 한 건물에 3명의 세입자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상황이었는데 맨 처음 화재는 식당에서 발생했다.
식당 주인이 피해를 본 노인(당시 20평 정도의 벌꿀 창고 운영)에게 변상을 해 주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화재가 노인의 창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바뀌었다. 노인은 손해배상까지 해야 할 위기에 몰렸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화재조사관이 찍은 자료사진과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최초 화재는 식당에서 발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물건들이 불에 녹는 온도가 다른데 이 원리를 이용해 불이 지나간 길을 확인했고, 유리창 파편이 떨어진 장소도 조사하는데 참고했다.
그 후 조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가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됐으며, 본인 또한 증인으로 출석해 화재가 시작된 장소를 입증하는 객관적 증거와 자료들을 제시했고 마침내 승소할 수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시던 그 노부부를 생각하면 이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
- 화재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화재조사권을 가진 소방이 간혹 현장에서 불협화음을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화재현장에서 증거물을 확보하는 것과 관련해 잡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화재조사든, 화재수사든 결국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신뢰받는 화재조사와 수사 시스템을 구축하는지가 관건이 되어야지 국민을 놓고 기관끼리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