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삶이 함께 녹아있는 익선동 한옥마을.
김종성
익선동의 특징이자 매력 가운데 하나는, 세련된 상점들과 세탁소·점집·한복집 들이 함께 이루는 '모던한 골목' 풍경이다. 관광지와 여행지의 차이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가까운 종로구 인사동이나 삼청동처럼 동네주민은 보이지 않고 상점, 관광객만 가득한 동네는 '핫 플레이스(Hot Place)' 혹은 유명 관광지일지는 몰라도 좋은 여행지는 아니다 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나와 골목길에 쌓여 있는 종이박스를 싣고 있었다. 이 도시 어느 곳에서나 익숙한 풍경이라 그런지 할아버지 뒷모습이 왠지 친숙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벌이가 좀 어떠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며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동네에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불편한 점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해가 저물면 동네가 어두컴컴하고 썰렁했었는데 요즘은 밤에도 골목길이 환해서 좋다신다.
할아버진 익선동에서 산 지 40년이나 됐단다. 대도시 서울 한 동네에서 40년 넘게 산다면 서울도 고향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지겨워서라도 이사할 생각을 했을 텐데...
오랜 세월 익선동을 떠나지 않은 이유라도 있었는지 궁금했다. 바람 불면 춥고, 장마 땐 비도 새곤 하지만 햇볕이 드는 마당이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어릴 적엔 연립주택, 커서는 아파트로 붕 떠서 살아온 내게 집 안마당은 어떤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걸까 궁금한 공간이다.
할아버지가 저녁밥 먹을 곳으로 알려준 백반집 '수련집'으로 갔다. 새로 생긴 음식점 '럭키분식' 옆에 있다. 동네 주민들이 단골인 20년이 훌쩍 넘은 백반집. 메뉴는 청국장·동태찌개·김치찌개 딱 세 가지로 할머니 두 분의 손맛과 인심을 제대로 맛 볼 수 있다.
고봉밥에 반찬으로 김치와 콩나물무침 외에 젓갈·깻잎장아찌·고추무말랭이무침 등이 나오는 대도 밥값은 3500원. 익선동 제일의 아니 서울 최고의 '가성비' 좋은 밥집이 아닐까 싶다. 슈퍼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하는 '구멍가게'와 저렴한 술집, 고깃 골목, 점심 땐 줄을 서서 먹는 칼국수 집 등도 남아 있다.
아쉬운 귀갓길, 골목 어귀를 걸어 나오는데 보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동네 지도 안내판에 소음·쓰레기·흡연을 삼가 해달라는 내용이 써 있었다. 익선동은 그저 도심 속의 '핫한' 한옥거리가 아니라, 오랫동안 주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주거지이기도 한 곳이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커피숍·레스토랑·와인 등 비슷비슷한 상업시설로 가득한 또 하나의 카페촌이 되지 않길 바란다. 재밌고 매력적인 도시는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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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한옥이 다닥다닥, 서울의 '숨겨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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