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의 독서법> 표지
북씽크
옛 선인들의 독서법을 주제로 한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바로 <조선 왕의 독서법>이었다. 이 책은 26대에 걸친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 자신만의 독서 스타일이 뚜렷했던 15명의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시대 임금은 웬만한 선비들보다도 더 많은 독서가 요구됐다. 유교국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군주상은 군사(君師: 뛰어난 지식으로 백성들을 직접 가르치는 군주)였기 때문이다. 임금이 신하들과 더불어 독서를 하는 경연(經筵) 역시 임금을 뛰어난 학자로 만들기 위한 제도였다. 힘이 아닌 덕(德)으로 통치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완성을 위해서는 임금 스스로 독서를 통한 개인의 수양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조선 왕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책 읽기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조선 왕들에게도 더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으리라. 막연한 기대를 품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다독왕 세종의 책 읽기수많은 임금들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끌었던 임금은 세종이다. 세종은 역대 임금들 중에서도 다독왕으로 유명했다. <세종실록>에도 기록된 충녕대군 시절의 일화는 세종의 광적인 독서병을 잘 보여준다. 당시 충녕은 병에 걸린 상태였다. 와병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아들을 본 아버지 태종은 환관들을 시켜 모든 책을 압수했다. 이때 <구소수간>(歐蘇手簡)이라는 책 한 권만이 남자, 세종은 이 책 한 권을 무려 백 번 이상 읽었다고 전하고 있다.
저자는 세종의 독서법을 '백독백습(百讀百習)'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한다. 말그대로 백 번 읽고 백 번 쓴다는 뜻이다. 한 권의 책을 백 번 이상 읽고 쓰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구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인데,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 위서에 실린 동우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고사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학자인 동우의 명성을 듣고서, 그에게 배움을 청하겠다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곧장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땅히 먼저 백 번을 읽어야 한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물리쳤다.
누군가 "책 읽을 겨를이 없다"고 답했다. 이에 동우는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책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되받아쳤다. "겨울은 한 해의 여가이고, 밤은 하루의 여가이고,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는 한때의 여가"라는 것이다. 결국 짬짬이 시간을 내서라도 한 권의 책을 100번 이상 읽을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기억 속에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천재적 군주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 속에서 샘솟던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을 100번 이상 읽을 정도의 피나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세종은 "궁에 있으면서 한가롭게 지내본 적이 없다"고 스스로 고백했을 정도로 한 순간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밥상에서까지 한 손엔 숟가락을 한 손엔 책을 들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세종의 독서법은 전형적인 '노력파' 스타일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