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대의 3기 비석을 보호하고 있는 비각 앞 왼쪽에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의 비문을 한글로 줄여 요약한 내용이 새겨진 빗돌이 있다.
정만진
종고산이 진해루의 뒷산이라면 고소산은 진해루의 앞산이었다. 바다를 턱밑에 둔 고소산에는 대포가 설치되었고, 여수를 지키는 대장은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며 이곳에서 군사 작전을 지휘했다. 그래서 포대가 있고, 장군의 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있다고 하여 고소산 정상부에는 고소대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었다.
종고산이라는 이름은 이순신이 붙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소산이라는 이름은 누가 붙였을까? 일제 강점기 때 고소산에 신사(神社)가 설치되었다는 슬픈 역사가 이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준다.
무엇 때문에 일본인들은 다른 곳 아닌 고소산에 신사를 두었을까? 고소(姑蘇)라는 이름은, 일본인들이 이곳에 신사를 둔 까닭을 암시한다. 고소는 곧 사소(沙蘇)로, 대략 여신(女神)이다. 즉, 일본인들이 신사를 설치하기 전에도 고소산은 이곳 여수 사람들이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제사 장소에 자신들의 신을 모심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려 들었던 것이다.
민속신앙지 고소산에 일본인들은 신사를 세웠다 사소가 등장하는 서정주의 시 '꽃밭의 독백'을 읽어본다. 이 시에는 '사소 단장'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하늘나라, 인간세상의 비루함이 없는 참된 세계로 나아가고 싶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영험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서정주는 사소를 찾는다.
서정주는 시를 써서 사소를 찾았지만, 일반인들은 사소산에 직접 올라 길흉화복(吉凶禍福)의 길과 복을 빌고 흉과 화가 내쳐지기를 기원했다. 사소산에 사소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사소 대신 천황 앞에 절을 올리라면서 이곳에 신사를 설치했다.
사소가 남아 있는 대표적 지명으로는 경주 선도산 성모사(聖母祠), 경기도 포천과 경남 하동의 고소성(姑蘇城), 경북 문경의 고모산성(姑母山城), 지리산 노고단(老姑壇) 등이 있다. 대전, 경기도 용인, 경북 성주 등지 전국 곳곳 할미산성의 '할미'도 모두 속뜻은 사소와 같다.
衰草斜陽欲暮秋시든 풀 저녁볕 받아 늦가을빛 뚜렷하니 姑蘇臺上使人愁고소대 위에서는 사람의 슬픔 짙어지네 前車未必後車戒앞수레의 가르침을 뒷수레가 못 이으니 今古幾番麋鹿遊예로부터 이곳에는 사슴들이 노닐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