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스위치
박다비
100년 가까이 된 집 안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오랜 세월을 이 집과 함께 했을 옛것들은 그것들이 지내온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어서인지 새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그것들만의 빛바랜 색감과 세월의 냄새를 풍기곤 한다. 이런 오랜 것들을 찾아낼 때의 카타르시스는 실로 엄청났다.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서 맡던 그 냄새가 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는 어린 마음에 할머니 냄새가 시큼하다고 싫어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그 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냄새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모든 엄마의 냄새는 그들의 엄마의 냄새. 즉, 할머니 냄새를 닮아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안채 한쪽 구석에는 반닫이장이 하나 놓여있었다. 아마, 예전에 살던 주인 할머니가 이 집에 시집올 때 들고 왔던 혼수가 아닐까 싶다. 그 옛날 귀한 물건을 고이 모셔두었을 그 반닫이장을 우리는 이 오랜 집과 함께 선물 받았다.
반닫이장은 카페 한쪽에 놓아두었는데, 한 번씩 문을 열 때면 오래되어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지만 왠지 기분 나쁘지 않은 냄새이다. 퀴퀴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시골냄새.
큰 방의 한 쪽 구석에 놓여있던 나무 문살과 창호지로 만들어진 미닫이 문, 열쇠는 어디 있는지 찾아볼 수 없지만 반닫이장의 자물쇠로 쓰였을 오랜 주물 자물쇠, 먼지가 쌓였지만 누군가 귀하게 모셔두고 신었을 가죽구두 한 켤레, 여러 겹의 벽지를 떼어내고 안쪽에 붙어있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신문광고, 오래된 장식장에서 나온 꽃무늬 그릇들.
그리고 옛날 할머니 댁에 놀러 가서나 보았던 동그란 스위치들이 그러했다. 적어도 내 나이보다 오래 되었을 이 옛것들은 먼지 쌓이고, 구멍 나고, 빛이 바랬지만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기에 공장에서 갓 나온 새 물건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우리는 버림에 익숙하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일까? 조금만 낡거나 혹은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버리고 있다. 과연 귀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을지 궁금하다.
'귀하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아끼고 보살피게 되는 것이다. 낡았다는 이유로 버릴 수 없는 그 무엇. 옛것들은 또한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한 '무언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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