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쓴 편지2015년 9월 장흥 여행 중 세정(가명)이가 이경옥 선생님에게 썼던 편지. 일 년 뒤, 올해 9월에 받아보았다.
이경옥
"세정이와 함께 여행도 자주 갔어요. 장흥, 전주, 기차 여행, 진도팽목항. 장흥에 갔을 때 '느리게 가는 편지'를 썼어요. 그게 얼마 전에 도착했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세정이가 1년 뒤에 배달이 안 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했거든요. 그때의 눈빛이 아직도 선해요."세정이가 선생님께 쓴 편지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제 곧 헤어지지만 아니 죽을 때까지 연락하고 만날 우리 상담쌤 정말정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샘 때문에 처음 해본 게 너무 많아서 비밀일기에 적어도 모자랍니다. 내 편이 되어준 첫 번째 사람, 돼지갈비도 처음 먹어봤고, 솔직히 먹어본 건 거의 다 처음이었습니다. 진도 팽목항을 함께 간 그 날 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유가족 아빠가 건강하게 재미있게 학교생활 잘 하라는 말씀에 눈물이 터졌습니다. 눈물 흘리게 해주신 거, 같이 산책해주신 거, 같이 공부해주신 거, 전부 다 평생 갚겠습니다. 쌤 때문에 알게 된 저의 많은 장점들 기억하겠습니다. 지금 저는 쌤 집에서 함께 살고 있어 염치없지만 웃을 일도 많고 행복합니다. 공부를 못해서 선생님은 못 되지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잘 자라겠습니다. 꼭 지켜봐 주세요!'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교사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마음을 나누는 지도자라고 했다. 반대편에 서 있는 지도자는 규율과 형벌로 다스리고, 백성과 다투는 지도자라고 했다. 나는 교직 9년 차에 처음 학생부장 역을 맡으면서 아이들을 규칙과 벌칙으로 다스리며, 가끔 학생과 다투고 있다. 물론 쏟아지는 공문 폭탄에, 아이들의 유난스러움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해본다. 그러나 변명은 변명일 뿐이다.
세정이와 이경옥 선생님께 한 수 배웠다. 선생님이 세정이에게 했다는 한 마디가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고등학교 가서 자꾸 사고 쳐서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다고도 하지 마. 난 너한테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어. 느려도, 조금 다르게 살더라도 괜찮아. 우리 12월 31일 이별여행 다녀오면서 손 꼭 잡고 약속했던 거 기억나지? 자기를 사랑하는 세정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백조가 아니라 진짜 미운 오리여도 괜찮아. 난 항상 네 편이고, 널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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