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사의 오래 된 현판
정만진
영취산 기슭에 자리 잡은 절로 고려 시대인 1195년(명종 25)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시대인 1560년(명종 15)에 법수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의승군의 주둔지와 승병 훈련소로서 호남 지방 의병, 승병 항쟁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법당과 요사가 소실되었다.
1624년(인조 2)에 계특대사가 건물을 중창하였으며, 1690년 법당을 증축하고 팔상전을 새로 지었다. 1780년 선당을, 1812년 심검당을 각각 중건하였고, 1925년 칠성각과 안양암을 새로 짓고 팔상탱화를 봉안하였다.
가람의 배치는 대웅전을 주축으로 되어 있다. 경사지 위에 사천왕문을 지나 봉황루, 법왕문, 대웅전, 팔상전이 순서대로 일축선상에 배치되었고, 대웅전 전면 좌우에는 적묵당과 심검당이 있다. 경내에는 보물 396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 불조전, 응진당 등 10여 동의 목조 건물이 있고, 대웅전 후불탱화, 흥국사 홍교, 괘불, 경전, 경서판각본 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흥국사는 옛날부터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할 것이다"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문화재청 누리집이 '임진왜란 때에 크게 활약한 의승 수군의 본거지로서 호국불교의 성지'로 소개하고 있는 흥국사는 여수시 흥국사길 160(중흥동)에 있다. 여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외지인으로서는 주소만으로 감을 잡을 수 없겠지만, 흥국사는 여수를 여행하는 서울·인천·부산·대구 등지의 답사자들이 가장 먼저 찾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곳에 있다.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한 영취산 아래 흥국사특히 진달래 절경으로 이름 높은 봄철 영취산을 오를 계획으로 여수를 찾은 답사자라면, 영취산에서 상춘곡(賞春曲) 한 수를 읊은 뒤 흥국사를 둘러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과연 이 절은 일주문을 지나 흥국사 중수사적비 앞에 이르면 좌우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내놓으면서, 왼쪽으로 가면 영취산 등산로이고, 중수사적비에서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면 흥국사 천왕문이 눈앞이라고 말한다. 1703년(숙종 29)에 건립된 중수사적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31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흥국사 대웅전의 삼존불과 후불탱
정만진
천왕문을 지나면 봉황루와 법왕문이 잇달아 나타난다. 보물 396호인 대웅전은 그 다음에 얼굴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누리집은 '여수 흥국사 대웅전'을 소개하면서 '흥국사는 (중략)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 데 공을 세웠으나 절이 모두 타 버려 지금 있는 건물들은 1624년(인조 2)에 다시 세운 것들'이라고 해설한다. 대웅전 역시 임진왜란 이전의 건물은 지금 볼 수 없고, 1624년에 중창된 것이다.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흥국사의 중심 법당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옆면에서 볼 때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과,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을 보여준다.
대웅전 안의 천장은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자리를 더욱 엄숙하게 만들기 위해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놓았다. 문화재청은 흥국사 대웅전을 '같은 양식을 가진 건물들 중 그 짜임이 화려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웅전, 후불탱, 노사나불괘불탱 등 많은 보물 거느린 흥국사불상 뒷면에는 보물 578호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興國寺大雄殿後佛幀)'이 있다. 탱화는 천, 종이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 거는 불교 그림을 말한다. 대웅전 후불탱은 가로 4.27m, 세로 5.07m의 큰 그림으로, 석가가 영취산(그래서 흥국사가 있는 산에도 영취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에서 설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탱화이다. 그림은 1693년(숙종 19)에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천신(天信)과 의천(義天) 두 승려화가가 그렸다.
▲흥국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1331호)의 모습. 노사나불괘불탱은 절 법당 앞뜰에서 괘불대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 걸개그림 형태의 대형 탱화이다. 사진은 일주문 앞 흥국사 안내판의 것을 재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모습과는 가로세로 비율, 색상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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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탱은 화면 가운데에 석가여래, 그 좌우 양옆으로 여섯 명의 보살들이 배치되어 있고, 다시 그 옆으로 사천왕을 거느리고 있다. 석가여래상 바로 옆과 뒤편으로는 10대 제자 등 따르는 무리들이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다. 탱화의 채색은 비단 바탕 위에 대체로 붉은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졌다.
문화재청은 '머리광배의 녹색은 지나치게 광택이 있어 은은하고 밝은 맛이 줄어든다'면서 '그러나 꽃무늬나 옷주름선 등에 금색을 사용하고 있어서 한결 고상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라고 해설한다. 흥국사 스스로는 이 탱화를 '원만한 형태와 고상한 색채의 조화에 힘입어 17세기 후반기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된다'라고 자평하고 있다.
후불탱 외에도 흥국사에는 관음보살 벽화(보물 1862호), 노사나불 괘불탱(보물 1331호), 수월관음도(보물 1332호) 등 보물급 불교 그림이 많다. 절 입구에 있는 홍교(보물 563호)도 보물이다. 물론 대웅전 자체도 보물이다. 이렇게 흥국사가 거느린 보물을 열거하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문화재가 많으니 유심히 살펴보며 답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꼭 보아야 할 의승수군유물전시관하지만 호국불교의 성지 흥국사에는 이들 보물들 외에도 꼭 보아야 할 문화유산이 있으니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한다. 다른 곳에는 없는 의병수군유물전시관이 바로 그곳이다. 이순신 휘하 의승수군들의 군사훈련 조감도, 이순신의 친필 글씨로 추정되는 '공북루' 현판, 의승수군들의 피 묻은 옷과 무기들...... 흥국사에 와서 이들을 아니 보고 어찌 돌아설 수 있겠는가.
흥국사 일원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일주문 뒤 부도밭을 찾아 의승수군들의 순국과 고초를 생각하며 경건하게 고개를 숙인다. 흥국사 부도군에는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불교계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들의 부도 12기가 모여 있다. 고려를 대표하는 승려로서 흥국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절을 다시 세운 법수대사, 계특대사, 통일대사와 조선 시대 최고 승직인 도총섭이었던 응운과 응암 등의 이름에서 보듯이 이 지역 역사와 한국 불교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나타나는 흥국사 부도밭. 이곳에는 고려를 대표하는 승려이자 흥국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조선 시대 최고 승직 도총섭을 역임한 응운과 응암 등 모두 12 분의 승려를 기리는 부도가 모셔져 있다. 이 부도밭은 흥국사가 전남 지역의 역사와 불교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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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도 흥국사 답사는 끝나지 않았다. 일주문을 들어설 때에는 미처 눈에 담기 어렵지만, '내려올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고은의 촌철살인처럼, 나오는 길에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매표소 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고, 들어올 때는 그 앞면에 새겨진 불상 무늬만 보았는데, 나가면서 보니 '남북 평화통일 기원- 영취산 흥국사'가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남북 평화통일 기원- 영취산 흥국사! 진정 호국불교의 성지다운 조형물이자, 민족사의 시대적 과제를 간결하게 드러낸 선언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붉은 피로 적셨던 흥국사, 이제는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사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기는 사찰이 되어 우뚝 서리라. '나라가 흥하면 흥국사가 흥하고(國興則寺興국흥즉사흥) 흥국사가 흥하면 나라가 흥한다(寺興則國興사흥즉국흥)'라고 했으니. 우선 흥국사부터 크고 높게, 그리고 끝없이 번창할지어다.
흥국사 답사 순서 |
홍교- 주차장과 일주문 사이의 표지석 뒷면("남북 평화통일 기원- 영취산 흥국사" 명문) 및 각종 안내 표지판(보물 1331호 노사나불괘불탱 사진)- 일주문- 부도밭- 중수비- 천왕문- 봉황루- 법왕문- 대웅전(2016년 11월 현재 전면 보수 중으로 관람 불가, 임시 대웅전을 의승수군유물기념관 옆에 운영 중)- 팔상전- 임시 대웅전- 의승수군유물기념관(군사훈련 조감도, 의승수군들의 무기와 피 묻은 옷, 이순신 장군 친필 추정 공북루 현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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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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