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경 씨가 초등학생들 사이로 걸어가고 있다.
김동수
그녀는 대걸레를 들고, 꼬마 친구들 사이로 유유히 지나갔다. 원래라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있을 때는 돌아다니면 안 됐다.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유령같이 나타났다,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아침에 못한 일을 마치려면 어쩔 수 없이 지금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이 스케이트 날로 디디고 있는 바닥이 좀 특이했다. 광운대 내의 다른 건물 바닥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깔끄러운 고무 재질이었다. 신발로 바닥을 몇 번 비벼봤다. 잘 안 미끄러졌다. 대걸레질하기 진짜 어려워 보였다. 아마도 얇은 날로 돌아다녀야 하는 링크장의 특성상 빙판 바깥은 미끄럼방지용 바닥 재질을 사용한 듯싶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대)걸레질을 했어요. 그런데 (대)걸레가 잘 안 미끄러지는 게 아니겠어요? 진짜 힘을 다해서 빡빡 문질렀어요. 그런데도 (대)걸레질이 안 되는 거 있죠? 정말 힘들었어요. 낑낑대면서 (대)걸레질을 하는데, 정애 언니가 왜 그렇게 (대)걸레질을 하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바닥에 물을 끼얹고 (대)걸레질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물을 좀 끼얹고 하니까, 그래도 조금은 편하더라고요."보경 조합원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경험한 일화다. 링크장은 다른 건물들과 차이가 많이 났다. 이를테면 건물 구조나 바닥, 환경 등이 그렇다. 처음 그녀가 링크장에 와서 고생을 좀 겪은 이유였다.
"9월쯤에 링크장에 왔는데요. 적응을 못했어요. 9월이라도 밖은 아직 덥잖아요. 그래서 반팔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입고 들어가면 링크장에서는 추워요. 스케이트 타려면 1년 내내 영하의 온도로 맞춰야 하니까요. 얼음 안 녹게 하려면요. 처음에는 면역이 안 돼서 엄청 추웠어요. 콧물이 막 나오더라고요. 기침도 많이 했고요. 정말 감기 걸리기 딱 좋았어요. 온도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그래서 다른 언니가 입었던 겨울용 근무복을 껴입고 일했어요. 여기서 스케이트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더운데, 파카를 입고 다녔거든요. 처음에는 왜 그런가, 했어요. 이제는 이해가 되죠. 청소하기에는 진짜 겨울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겨울은 안과 밖의 온도가 비슷비슷하잖아요."링크장은 원래 보경 조합원의 청소 구역이 아니었다. 병가로 휴식 중인 노동자를 대신해서 일하는 것에 불과했다.
보경 조합원은 처음 입사한 7월부터 계속 일손이 모자란 곳에 가서 "땜빵" 역할을 해왔다. 이를테면 그녀는 다른 동료들이 휴가 등으로 잠시 빠진 자리를 메워왔다. 주로 바닥 왁스칠 작업에 투입됐다. 7월이면 학교가 방학을 해서 대청소가 이뤄졌다. 대청소 말고, 일상적인 청소 일도 했다. 벌써 광운대의 모든 건물들을 거의 한 번씩은 다 돌아봤다. 그런데 "땜빵"도 고충이 있었다.
"저는 '땜빵'이라서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해요. 일을 하려면 전날에 미리 보따리(청소도구들)를 다 챙겨서 다음날 제가 일할 곳에 싸 짊어지고 가야 해요. 그래서 미리 가져다 놓아야 해요. 그런데 정작 당일 새벽 때까지 어디에서 일하라, 연락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출근카드를 찍고 소장님께 전화를 하죠. 소장님한테 '저 어디로 가요?' 그러면 이번에는 저리 가라, 말해주시는 거예요. 이런 일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매번 그랬어요. 미리 좀 말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저도 그러려니 했어요. 어차피 '땜빵'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줄곧 링크장을 하고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고요."그녀가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건 업체의 청소 위탁업무 계약 시 인원과 현재 청소 일을 하는 노동자 수 사이의 괴리 탓이었다. 업체가 계약 인원을 맞추려고 보경 조합원을 뽑았는데, 현재까지 마땅히 일할 빈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지금쯤이면 얼마 전 완공된 80주년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겼어야 했다. 80주년기념관이 그녀가 일할, 유일한 빈자리다. 애초에 보경 조합원을 채용한 목적도 새 건물에 청소 업무를 맡길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업체는 아직까지 말이 없다.
"처음에 소장님이 하는 말이 나는 임시로 링크장에서 일하고, 11월 4일에 새 건물(80주년기념관)로 보내준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까지 연락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화했죠. 어떻게 됐냐고요. 왜 여태껏 연락이 없느냐고. 그러니까, 소장님이 11월 14일 아니면 22일에 알바생이 오니까, 그때까지 참으라고 하더라고요. 약속한 지 2~3주가 지났는데도, 여태 말이 없어요. 알바생도 안 왔고요. 그러더니만 12월 19일에 나를 보내주겠다, 저희 분회장님한테 이야기하셨나 봐요. 그런데 지켜질지 잘 모르겠어요.""노조라고 다 같은 노조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