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 뒤에 숨은 괴물', 난 아니다?

사이버 폭력 문제 파헤치는 청소년 소설 <손가락 살인>

등록 2016.12.05 11:33수정 2016.12.0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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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댓글, 익명성 속에 숨어 악의적인 글로 상대방의 인격을 살인하는 댓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댓글 서비스를 없애면 된다. 소통을 거부하고 아날로그적이며 구시대적인 삶을 살고자 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21세기, 인터넷이 일상인 이 시대에 댓글을 폐지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손가락 살인>은 가해자는 무심하지만, 당한 본 사람만이 그 심각성을 안다는 악성 댓글, 사이버 폭력의 문제를 가해자의 시선을 통해 파헤치는 청소년 소설이다.


 <손가락 살인> 톰 레빈 저
<손가락 살인> 톰 레빈 저르네상스
사건은 캐니언시티의 소규모 소수 민족 집단 거주지에 살던 16세 소년 케빈 쿠퍼가 한 '페북 친구'의 포스팅에 댓글을 남기면서 시작된다. 케빈의 포스팅에 친구의 또 다른 '페북 친구들'이 댓글을 연이어 올린다. 그 중 호의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다. 처음에는 고등학생들이 흔히 하는 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친구들은 케빈에게 점점 더 정도를 넘어선 희롱을 한다.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케빈의 바람과는 달리, 페북 친구들은 성인 남성조차 얼굴을 붉힐 정도로 모욕을 주고 야유를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아이는 직접적인 가해자로, 어떤 아이는 방조자로 있었지만, 이들의 희롱은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케빈이 로그아웃 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목도리를 목에 감은 채 자기 방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조용히 묻힐 것 같았던 이 사건은 한 지역 신문 기자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슈화 되고, 아이들은 케빈을 죽음으로 몰아간 혐의로 법정에 서야 하는 신세가 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다. 그러나 아이들은 '페이스북에다 빌어먹을 농담 몇 번 쓴 거 밖에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항상 있는 일이라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주인공 토리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토리는 열여섯 소녀로 소프트볼팀 선배와 친구들로부터 인정받는 '운동짱'이다. 댓글로 몇 마디 호응해 주면 선배들이 좋아하니까 했을 뿐이라는 토리는 중학교 때부터 알던 케빈의 죽음 이후,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늘 한 편이 되어 주던 오빠마저 자신을 외면하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그런 토리에게 밤늦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살을 하려 한다는 남자 아이, 앤디의 전화였다. 최종 심리를 앞두고 토리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다.


토리는 자살하겠다는 앤디의 전화를 처음에는 장난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앤디와의 통화 사실을 전해들은 오빠는 '자살하겠다는 사람의 전화를 파울볼 잡아내듯이 예사롭게' 대한다며 토리를 비난한다. 결국 토리와 앤디의 통화는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시간을 정해 자살을 예고한 앤디를 찾아나선 토리는 그 모든 것이 오빠와 앤디가 꾸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다들 날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거죠?


작가 톰 레빈은 작가가 되기 전까지 3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하고 더러는 연출했다. 그래서 그런지 <손가락 살인>은 단막극처럼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빠르게 진행된다. 작가는 토리와 앤디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두 아이의 대화 중간 중간에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긴장감을 더하는 형식을 만들어냈다. 자살 원인인 포스팅 댓글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악성 댓글들과 닮았다.

작가는 사실상 자살을 촉발한 청소년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지 않는다. 자살한 케빈에게 "왜 아직도 안 뛰어내린 거야." "똥퍼 없었음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하하하" 하는 식의 표현은 악의 없는 놀림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더군다나 사건의 결과를 생각해 볼 때, 죽은 앤디를 똥퍼니 호모니 하는 말로 몰아세웠던 아이들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말도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살한 케빈이 아이들에게 요구했던 말을 이제는 가해자인 토리가 똑같이 한다는 것이다. "왜 다들 날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거죠?" 캐니언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날아든 댓글을 보며 토리는 케빈이 죽기 전에 한 말을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토리의 독백을 통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고발하려 했는지 모른다. 사이버 폭력의 특징을 말이다.

<손가락 살인>은 누구든지 사이버 폭력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해 준다. 그러면서 "맞다 보면 맷집 생긴다"는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보여준다. 혹자는 워낙 많은 인터넷 악성 댓글로 '맷집'이 생겼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의식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기를 방어할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다면 악성 댓글을 이겨내지 못하는 인간은 당해도 싸다는 말인가?

친구의 죽음에도 죄책감보다 죽은 아이를 비난하며 변명하는 토리는 사이버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모습과 닮아있다. 죄책감 없이도 돌을 던질 수 있는 세상은 끔찍하다. 얼굴을 보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 사이버 폭력이 <손가락 살인>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아들을 잃고 절규하는 쿠퍼씨는 <손가락 살인>이 냉혹한 살인마가 아니라, 겁쟁이 아이들에 의해 일어날 수 있음을 이렇게 지적한다.

"케빈을 괴롭힌 아이들은 겁쟁이들이에요. 와이파이 뒤에 숨은 괴물이죠. 컴퓨터 화면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가 아닌 줄 알아요.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인데도 말이에요. 그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했다면, 우리 케빈은 오늘 살아 있었을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와이파이 뒤에 숨은 괴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손가락 살인

톰 레빈 지음, 김배경 옮김,
르네상스, 2016


#손가락 살인 #톰 레빈 #사이버 폭력 #악성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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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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