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은 ‘유구한’을 ‘오랜’으로, ‘사회적 폐습’을 ‘사회의 나쁜 버릇’으로 바꾼 것처럼 쉬운 우리말로 헌법을 적어 놓아서 읽기도, 외우기도 한결 쉽다.
조혜원
촛불 들 때 꼭 알아 둘 헌법, "모든 국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그렇지, 이거야!' 퍼뜩 눈에 들어오는 내용, '집회, 결사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 광장에서 언제까지 평화시위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 무엇보다 죄 없는 사람들 잡고 가두는 데 능통한 저들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 촛불을 들 때 꼭 알아 둘 헌법이다. 나부터 외워 본다. 기타랑 함께. 이번 노래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로 마무리되는 '광야에서'로. 집회, 결사와 왠지 통하는 느낌이 팍팍 나니까.
(이오덕 선생님은 '집회, 결사'를 우리말로 살리고자 '모임, 단체 만들기'로 바꾸었지만 이것만은 원문 그대로 외웠다. 집회, 결사라는 말이 뼛속 깊이 박혀서 도저히 못 바꾸겠더라. 선생님도 이런 내 마음을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겠지?)
play
▲ 집회, 결사의 자유 그리고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라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집회, 결사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말하는 헌법은 저 노랫말처럼 뜨겁고 묵직한 노래 '광야에서'랑 왠지 잘 통하는 느낌이다. ⓒ 조혜원
<헌법 제21조>1.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2. 언론, 출판의 자유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는 인정하지 아니한다. <헌법 제12조>1.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을 따르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법에 맞는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면 처벌, 보안 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2.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다음엔 뭘 외워 볼까?' 뷔페식당에서 여러 음식 가운데 먹고 싶은 것을 고르듯, 마음에 담고 싶은 헌법을 찾으려고 이쪽 저쪽 살핀다. '찾았다, '탄핵'이란 글자!' 내 마음이야 탄핵이 아닌, 끌어내리는 것을 바라고 있으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탄핵 조항도 알아 둬야 할 것 같다.
찾았다, '탄핵'이란 글자!사안이 중요한 만큼, 이 헌법도 기타 선율에 실어 보기로 했다. 뭔가 힘찬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 이 노래 저 노래 생각하다 '인터내셔날가' 당첨!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노랫말이 팍팍 와 닿는 게 촛불 광장에서 부르면 딱 좋을 듯하다. 인터내셔날가를 기타로 치면서 헌법 65조를 읊는데 힘차고 벅찬 느낌이 밀려온다. 조금 긴 헌법도 잘 외워지는 걸 보니 역시 음악의 힘은 대단해!
play
▲ 대통령 탄핵 헌법은 힘찬 노래와 함께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인터네셔날가를 기타로 치면서 헌법 65조를 외워 보는데, 꼭 이 노래를 부를 때처럼 힘차고 벅찬 느낌이 밀려온다. ⓒ 조혜원
<헌법 제 65조>1.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 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감사위원, 그밖에 법률이 정하는 공무원이 그 직무 집행 시에 헌법이나 법률을 어긴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2.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삼분의 일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 의원 삼분의 이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3. 탄핵 소추의 의결을 받은 사람은 탄핵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를 멈춘다.4. 탄핵 결정은 공직에서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따라서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탄핵 헌법까지 외웠으니 다음 순서는 자연스럽게 대통령 선거 조항. 이번엔 손으로만 써 본다. 굳이 기타 반주까지 얹고 싶지는 않다.
<헌법 제68조>1.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때에는 임기가 끝나기 70일에서 40일 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2. 대통령 자리가 비었을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죽거나 판결 그밖의 일로 그 자격을 잃었을 때는 60일 안에 후임자를 선거한다.'타는 목마름으로' 헌법을 읊는다, 외친다!기타랑 함께 헌법을 외우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다. 요 며칠 세상 돌아가는 꼴이,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헌법 따위 쳐다보기도 싫게 만든다. 첫 마음이 자꾸 흐려지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헌법을 놓을 때가 아니지, 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숨을 가다듬고 책을 다시 펼친다.
심드렁하게 몇 장 넘기다가 눈이 번쩍 뜨인다. '공무원의 불법 행위와 배상 행위'에 대한 헌법 29조다. 문득 페이스북 친구가 최근에 남긴 글이 생각났다. 촛불 시위로 국민들이 시간 쓰고 돈 쓰고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는데, 이 과정을 전부 돈으로 환산해서 대통령한테 국민 보상청구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래, 이거야! 대통령한테, 이 나라한테 국민들은 보상을 청구해야 해. 이것 또한 헌법이 보장한 국민들의 권리!' 이런 생각이 들면서 침울하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다. 흥분마저 된다. '이럴 때야말로 기타가 필요해!' 얼른 기타를 들고 헌법 29조를 읊는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는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가 이럴 때 딱 어울린다. 노랫말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기타를 치면서 헌법을 읊는다, 외친다!
play
▲ 헌법대로 대통령한테 보상을 청구하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는 심정으로 헌법 29조를 기타와 함께 읊는다, 부른다. ⓒ 조혜원
<헌법 제29조>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대로 국가 또는 사회 일반 단체에 정당한 갚음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헌법을 모르는 국민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습니까?""헌법을 모두가 읽어서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의 틀을 어떻게 짜 놓았는가, 나라의 바탕을 어떻게 다져야 하겠는가를 생각하고, (…) 그리고 쉬운 말로 생각을 서로 주고받아서 모든 문제를 결정하고 풀어나간다면, 우리나라는 그제야 참된 민주 나라가 될 것이고, 통일도 저절로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말을 살리는데 달려 있고, 우리말을 살리는 일보다 더 크고 급한 일이 없습니다."(이오덕, 머리말에서)책 머리말로 돌아가 본다. 다른 때 같으면 이오덕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에, "네, 맞아요, 꼭 그렇게 할게요." 하면서 진심어린 대답을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하겠다. 이오덕 선생님께 그 까닭을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 당장은 우리말을 살리는 일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 있어요. 헌법이 정한 대로 대통령이 물러나고, 정당하게 죗값을 치르는 일이요. 지금은 우리말이 살아나는 일보다 그 일이 더 크고 급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을 볼 수 있었기에, 저부터 참된 민주 국가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쉽게 읽을 수 있는 선생님 책이 아니었다면 제 아무리 김제동 씨한테 감동을 받았어도 아직 헌법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도 같아요. 그래서 우리말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일어났답니다.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요즘 대통령을 두고 '하야'라는 말이 정말 자주 나와요. 저요, 이 말 대신 '물러남' '내려옴' 같은 말을 쓰려고 무지 애썼어요. '하야하라'는 말이 입에 착착 붙어서 다른 사람들처럼 마구 쓰고 싶긴 한데도 꾹 참았답니다. 다 선생님 때문이고, 선생님 덕분이에요!마지막으로, '헌법을 모르는 국민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습니까?' 하셨던 선생님의 간절한 외침, 마음 깊이 새길게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야기할게요. 실은, 이 글도 그런 마음이 간절하게 들어서 쓰기 시작했답니다. 선생님께서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라고, 남겨야 한다고 알려주셨으니까요."
우리말로 살려놓은 헌법 - 이오덕 우리말 바로쓰기
이오덕 지음,
고인돌, 2013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4
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공유하기
우리 말로 쓴 헌법, 노래처럼 부르니 입에 '착착'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