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가사로 지난 26일 범국민대회 무대에 오르지 못한 그룹 DJ DOC. 사진은 지난 6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드림콘서트' 중 한 장면.
이정민
그런 생각을 하던 중, DJ DOC의 광화문 공연과 관련한 논란이 일어났다. 이들은 시국을 다룬 노래 <수취인분명>을 발표하고 집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노래의 여성혐오적 가사가 논란이 되었고 결국 공연이 취소된 것이다. 이후 일각에서는 이는 지나친 검열이며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것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DJ DOC의 노래가 정말 검열을 받고 발표되지 못한 것도 아니며, 이들이 원한다면 어디서든 자유롭게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취소된 것은 DJ DOC의 노래가 집회에서 공연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지, 이들에게 노래를 부르고 배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의 노래가 정말 '여성 혐오'를 담고 있으며, 그래서 집회에서 공연되기에 부적합한 곡이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령 노래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가사 중 하나인 '미스 박'을 살펴보자. 과거는 물론 지금까지도 직장 내에서 여성들이 이름이 아니라 '미스(Miss)'로 불려온 것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그 표현은 호칭으로서도 부적절하지만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겪는 차별과도 맞닿아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적이다.
회사에서 여성들이 커피 타오기나 청소 같이 불필요한 노동을 강요받는 것은, 그들이 전문적인 직업인이 아니라 한 명의 여성(Miss)로 취급되고 그 성별에 적합한 일이 있다는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직장 내 성추행과 같이 성적 대상화가 전제되는 폭력이 발생하는 것도, 성별을 이유로 승진에 있어 부당한 처분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말하자면 이름이 아닌 '미스'로 불리며 차별과 모멸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표현이 가능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자신의 삶이 격하된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지적이 된 다른 가사들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여성들도 당연히 한 사람의 시민이며, 집회의 현장에도 존재한다. 거기에 '미스'와 같은 표현들이 만들어낸 혐오와 차별에 저항한 페미니스트들도 있었다.
나는 집회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요구하고 만들어 낼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 현장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내재된 표현이 담긴 노래가 공연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정치는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모색하는 일이지, 누군가를 투명 인간 취급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왜 성소수자들은 광장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등장했을까? 그 이유는 누군가가 노동자·남성·정당원이자 시민인 동시에 누군가는 성소수자이자 시민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는 페미니스트이자 시민이며, 누군가는 단지 다른 몸을 '병든 몸'으로 치부하며 '병신'이라는 비하적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주장해온 장애인이자 시민이기 때문이다.
만약 광장에서 이들의 존재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이는 우리가 상상한 보편적인 시민의 얼굴이 너무나 협소했음을 의미한다. 하나의 시국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점한 사회적 위치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더욱 다양해지고 풍성해진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