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490여개 사회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관계자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 공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에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효도 교과서'"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윤석
이 책이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사 교과서'가 되리라는 걸 예상 못 한 이는 없다. 오죽하면 정부 발표 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한정판 교과서'라는 조롱이 쏟아졌겠는가. 그런 탓에 대부분 찬양 일색인 박정희 관련 내용이 무려 10쪽이나 된다는 것도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전체 분량이 315쪽이니, 대략 1/30을 오로지 박정희에 할애한 셈이다.
가장 큰 논쟁거리였던 '대한민국 수립' 부분도 그랬다. 기존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용어를 폄훼하기 위해 논리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까지 내놓는 걸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올바른 교과서'임을 강조하기 위해 인터넷에 교과서 검토본과 함께 별도의 'Q&A' 자료까지 탑재해 놓았는데,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인데도 애먼 교육과정까지 끌어다 장황한 해명을 내놓고 있다.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긍지를 일깨워주고자 한다는 설명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서술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했다는 해석까지 덧붙였다. 국가 대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기존의 모든 책들은 졸지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 '참 나쁜 교과서'로 전락해버렸다.
또,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에서는 정부가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최근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드러났듯 불법적 정경유착의 관행이 여전하고, 어느덧 우리 경제의 짐이 돼버린 그들을 '균형적 시각' 운운하며 짐짓 두둔하려는 건 시대착오적인 행태다. 하물며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가르칠 교과서다.
'통일 대박'이라더니, 기-승-전-북한 책임?이러한 시도들은 삼척동자라도 다 예측한 바라서 어처구니없고 황당할지언정 솔직히 이해할 수는 있다. 오히려 국정교과서 강행 의도를 'Q&A' 자료에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소개하며 토론수업을 진행해본다면 올바른 역사의식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다. 아이들이 박정희에 대한 더 많은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고, 그동안 찬밥 신세였던 현대사를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진짜 충격적인 것은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폄훼다.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에 견줘 보면, 북한에 관한 내용은 사료에 입각한 사실일지라도 무조건 간략하고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장래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함에도 마치 다시는 보지 않을 원수처럼 표현하고 있다. '통일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말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차라리 '저주'라고 해야 옳을 만큼 편파적이다.
하긴 애초 정부는 금성교과서 등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들을 뭉뚱그려 '친북 교과서'로 낙인찍었으니, 이 또한 예상 못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도, 해방 후 분단에서 냉전 시기에 겪었던 우리 현대사의 모든 문제의 책임을 북한에 돌리고 있다. 현대사 서술의 상당 부분이 '기-승-전-북한의 책임'처럼 느껴질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