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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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기 힘든 국정 농단과 그로 인해 헌정 중단에 버금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만큼 새로운 상상을 해보자. 광장의 열기를 이어갈 직접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구상해보는 것이다.
시민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는 국회를 대신해, 광장의 요구를 올곧게 담아낼 시민 의회가 있다면 어떨까? 시민의 힘으로 광장에서 300명의 시민 의원을 선출해서 합의된 의견을 제출할 기구를 구성하면 어떨까? 현 국회는 국회대로 돌아가되, 새롭게 시민 의회를 구성하여 기존 정치권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시민 의원 300명은 현 국회의원 수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시민 의원은 종종 국민의 의사에 눈감곤 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을 대다수로 채우자.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을 지닌 200명의 일반 시민'을 시민 의원으로 뽑자. 이들 시민 의원은 수많은 자원자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하면 좋다. 이들은 시민 의회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 의회 내에서 초기에는 주로 상식적인 시민의 눈높이에서 배심원 역할을 하겠지만 성장 속도에 따라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각 분야 전문가 100명'을 시민 의원으로 뽑자. 이들 전문성을 지닌 시민 의원은 광장과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추천을 받자. 이들 전문가들은 일반 시민 의원과 함께 소통하며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들 300명이 함께 세미나를 벌이고 집중 토론을 하며 합의 과정을 거쳐 광장의 요구를 법률이나 정책으로 구체화하자. 그리고 시민 의회가 구체화한 법률을 국회에 제안해 통과되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시민이 주권자로서 '시민 발의권'을 행사하자.
시민 의회를 통해 우리의 다양한 요구를 법률과 정책으로 구체화해 국회와 행정부가 처리하게끔 계속 압박하자. 이렇게 헌법상의 권리를 현실에서 실현해 보는 것이다.
'추첨으로 선출한 시민 의회'가 광장의 요구를 수렴할 수 있어이것은 무모하기만 한 상상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는 광범위하게 지적받고 있다. 그래서 그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여러 형태로 실행되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는 '주인-대리인 문제'를 낳곤 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 의회가 이미 실행된 바 있다. 2003년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정부는 전형적인 소선거구제 의회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추첨으로 선출한 시민 의회'를 세웠다. 당연히 시민 의회는 직업 정치인이 아닌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을 지닌 일반 시민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들은 강도 높은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더욱 공정한 선거 제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혹여 어떤 이는 시민 의회를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구성하는 것에 물음표를 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선거에서 주로 누가 뽑히는지 보자. 돈이 무척 많거나, 학력이 매우 높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최고 엘리트로 선망받는 이들이 주로 뽑히곤 한다. 왜 '잘난' 사람만 시민을 대표하는가? 사회 구성원은 무척 다양한데 어째서 그토록 '잘난' 사람만으로 대표 기구가 구성되는가? 이는 선거라는 제도의 고유한 특성이자 한계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에서도 선거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선거는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으며, 귀족에게 유리한 제도다. 당시에도 선거는 귀족들이 대표로 선출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것이라고 비판받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선거는 귀족제, 추첨은 민주제'라고 지적한 것은 유명하다("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적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적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선거 대신 추첨을 사용했다. 추첨을 통한 무작위 선출은 주요한 인구 집단들에게 대체로 비례적인 대표를 보장한다. 쉽게 말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골고루 대표가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이른바 민의가 왜곡되지 않고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가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매번 모든 시민이 모여 토론하고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고대 아테네의 시민 법정과 평의회는 아테네 민주정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들 기구는 인민의 권력을 '대행'했다. 그럼에도 그것을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 누구나 돌아가면서 최고 권력 기관을 구성하는 '추첨'이라는 방법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시민이 최고 권력 기관을 번갈아 가면서 차지해 권력을 구성하기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른 것이다.
결국,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랬듯이 추첨으로 선출한 시민 의회는 다양한 시민들로 구성되어 그들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민주적인 방식이다.
시민 발의권을 행사할 '시민 의회' 만들자
그렇다고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방식을 오늘날 그대로 도입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민주주의 실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 심화에 참고해야 할 풍요로운 자산으로, 앞서 말했듯 이미 캐나다의 한 주 정부는 그러한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시민 의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전문성도 중요하다. 그래서 시민 의회의 3분의 1은 전문가를 추첨이 아닌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전문가와 일반 시민이 효과적인 협업을 하게 하자.
새로운 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과 결함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실험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은 크게 성숙했다는 것은 한 달 넘게 계속되는 촛불 집회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의심과 불신의 대상이 된 국회에 그대로 맡기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현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준비하자. 광장에서 표출되는 시민의 다양한 요구가 흩어지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주권자가 주인으로서 발언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 의회를 구성하는 것이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국회가 내놓지 않는 시민 발의권을 우리가 스스로 행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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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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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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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민심 반영 못하는 국회... '시민의회'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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