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008년 5월 31일 밤 촛불을 밝히며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남소연
2008년 촛불시위는 5월 2일부터 7월 12일까지 연인원 300여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촛불시위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 72시간 릴레이 시위처럼 장시간에 걸친 마라톤 시위가 등장했는가 하면 촛불문화제로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경찰과 대치하는 철야시위도 일상화되었다.
촛불시위 주역은 처음 촛불을 든 10대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충만해져 있던 30대까지를 아우르는 청년 세대였다. 청년 세대는 2008년 촛불시위 과정에서 자신의 속성을 액면 그대로 표출했다. 촛불시위 참가자들 다수는 그 어떤 조직에도 구속되는 것을 꺼렸다. 심지어 그 누구인가가 자신을 가르치려 들거나 이끌려고 하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촛불시위 중심은 참가자 각자였다.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이 한 곳에 모여 집회를 할 때도 준비된 연사의 정치연설이 아닌 참가자들의 자유로운 발언이 줄을 이었다. 전체 대열을 이끌고 가는 지도부도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시위 참가자들 각자가 판단해 움직였고 필요하면 즉석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청년 세대는 2008년 촛불시위에서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촛불시위를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들에게 투쟁과 놀이는 처음부터 하나였다. 아울러 이전 시기 집회 시위를 지배했던 비장함과 강인함을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으로 대체했고, 물리적 힘을 문화적, 예술적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으로 대체했다. 그럼으로써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절로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오도록 만들었다.
청년 세대는 2008년 촛불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발산했다. 그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터득한 특유의 확장성을 바탕으로 거대한 시위 대열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바탕으로 분위기에서 모두를 압도할 수 있었다. 아울러 온라인에서의 왕성한 활동을 결부시킴으로써 여론을 쥐고 흔들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결국 이명박 스스로 졸속 추진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비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완전 중단시키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거둔 것이다.
청년세대는 2008년 촛불시위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시위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낡은 문화에 익숙해 있던 운동권 세력과 적지 않은 문화 충돌을 경험해야 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쓸데없이 분위기를 주도하려고 하거나 폭력적 방식에 집착했던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이러한 문화 충돌은 청년세대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겼고 오랫동안 대규모 촛불시위의 재현을 어렵게 했다.
2016년,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