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어디에 앉아 있든 사람들은 촛불의 중심이 된다.
서창완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자연계의 법칙은 대한민국에서 예외다. 제국주의 독재에 빌붙었던 친일 형질은 반공독재를 거쳐 군사독재로, 다시 문민 독재로 이어졌다. 정상적 자연 생태계에서 지나치게 큰 몸집의 개체는 공룡처럼 도태된다. 하지만, 독재체제 아래서 이런 자연선택설은 힘을 잃는다.
지나치게 크고 강한 재벌만이 정경유착이란 방법으로 독버섯처럼 살아남는다. 친일과 독재, 정경유착으로 적자생존의 토양을 만들어 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촛불을 밝히는 것은 '박근혜 게이트'를 빚어낸 바로 그 기득권 구조를 향해서다.
오후 7시 50분.
'대동하야지도'가 그려졌다. 나라를 바꾸겠다는 지도다. 피의자 박근혜의 정치적 고향 대구 2만, 민주화 성지 광주 5만, 부산 10만, 대전 3만... 전국 100만 개의 촛불이 모였다는 말에 시민들은 함성을 외쳤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넘쳐흘렀다. 동시에 그 공간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애국의 주인은 시민이다오후 8시.
가수 전인권의 '애국가'가 광화문에 울려 퍼졌다. 아이러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으로 시작하는 애국의 노래는 국가를 유린한 자들이 즐겨 찾던 노래가 아닌가. 주로 편을 가르는 도구였던 '애국'은 정의의 촛불을 두려워하는 청와대 맹수들이 써먹던 궤변이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애국'의 칼로 내리쳤다. 그러면 수많은 '빨갱이'와 '종북'이 만들어졌다.
전인권의 애국가는 광장에 모인 촛불 시민에게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고, 부당한 독재에 저항하며,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고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억울하게 빼앗겼던 '애국'을 되찾았다. 지금도 촛불을 종북좌파 세력의 책동이라고 회덧칠하는 비루한 자들에게 무엇이 애국인지 보여줬다.
오후 8시 14분.
행진이 시작됐다. 전인권의 "해엥진 해엥진 하는 거야"라는 노랫말이 신호였다. 앞에서부터 시민들은 파도를 타듯 일어났다. 8방향으로 청와대를 학익진으로 감싸는 대열 중 하나에 끼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박근혜가 몸통이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청와대로 가 닿길 바라며 사람들은 구호를 외쳤다. 그러면서 내딛는 발길에 힘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