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프로젝트>의 한 페이지다소 혐오스러운 이미지로 재현된 '악어'의 이미지는 모든 남성이 가해자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한 피해여성에게 이입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악어프로젝트
<악어 프로젝트>(토마 마티외 지음, 푸른지식 펴냄)라는 만화는 길거리 성폭력을 중심으로 저자의 주변 증언을 토대로 한 실화를 담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성기를 노출하거나, 대중교통에서 몸을 만지거나 이를 제지하면 모욕적인 언사로 괴롭히는 일, 새벽에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서 밤새도록 그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남성, 우연히 마주친 헤어진 남자친구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며 모욕적인 언사를 해도 여성의 잘못인 양 책임을 돌리는 이들이 모두 악어의 외양을 하고 있다.
여성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등장하지만, 남자들은 모두 악어의 얼굴로 나온다. 남성이 모두 범죄자라서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여성의 편에 서는 것을 의도한 표현이다. 한 번쯤 피해자의 입장에 서 본다면 더는 가해자에게 이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바람이 드러나 있다.
다시 밥 얘기로 돌아가서, 거의 혼자서 이따금 찾았던 동네식당 얘기를 해야겠다. 비싸지 않지만 저렴하지도 않은 값에 먹을 만한 끼니를 제공하는 평범한 밥집이었다. 3년 전 가을, 그곳의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한 여성시인이 약물을 이용한 추행을 당했다. 옷이 반쯤 벗겨진 채로 약물에 취해 정신을 잃은 그분을 두고, 가해자인 식당 주인(이자 시인)은 자리를 떴고 피해자는 약 열 시간 동안 찬 바닥에 방치되었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살아남았고, 비슷한 수법으로 당한 피해자들의 존재에 힘입어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그나마 처벌 가능성이 높아서 안도하게 되는 이 사건은, 강간 약물이 버젓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을 그 식당에서 밥을 먹은 내게 큰 공포와 욕지기가 치밀게 했다.
크고 작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없는 여성을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세상, 여성들은 도촬과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언어적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나 또한 첫 직장에서 거래처와의 회식 자리에서 일어난 성희롱에 문제제기하며 사직서를 내고 인권위에 진정한 경험이 있다(그 외에도 적으려면 손이 아프다). 이런 일상을 사는 것이 결코 쉬울 리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방관자로서의 팔짱을 풀고, 주변의 여성들을 어떤 보상인 양 바라는 태도를 내려 놓아달라.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쉽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도구나 성적인 분방함을 라벨링 하는 지표가 아니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루가 되어줄 것이다. 자신을 옥죄는 남성성의 감옥에서 걸어 나온 이들과 함께, 성범죄자가 만들지 않은 음식과 문학, 창작물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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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하려면 '팜므파탈' 혹은 '무성적 존재'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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