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꼬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Burial of the Conde de Orgaz)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의 중요한 재정 담당역할을 하고 있는 작품
손인식
"화가들이여 오늘을 충실히 살고 있는가? 역사의 인물, 시대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가? 스스로 역사가 되고 싶은가? 반드시 이 작품을 참고할 지어다. 보아라! 이 훌륭한 살아있는 선생을. 파블로 피카소가 왜 마드리드 미술학교를 자퇴하고 톨레도를 학교삼아 다녔겠는가? 바로 이런 작품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마침내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을 한 점 작품 게르니카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명쾌하게 작품으로 대변했던 이 작품의 영향 때문이 아니겠는가?"작품에 얽힌 이야기 대강은 이렇다. 1323년 사망한 톨레도 지방의 귀족 오르가스 백작은 일생동안 성당에 재정 지원을 했다. 지역의 소외된 이들을 돕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남은 재산마저 가난한 성도들과 수도자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유언으로 남겼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그가 죽은 지 692년이 지났고, 엘 그레꼬가 그의 장례식에 얽힌 전설을 작품으로 그린 것이 430년이 지났다. 그의 무덤 위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교회가 산토 토메 성당이고 엘 그레코의 작품은 그를 위한 부속 예배실 중앙을 보벽하고 있다. 작품 한 점의 재정담당 역할이 이미 수백 년을 이어왔는데, 앞으로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이미 많은 문서들에 설명이 되어 있을 것이어서 췌언일 것이다. 그러나 길동무 여행다운 인상파식 감상기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전에 일단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톨레도 사진을 들여다볼 때는 뭘 써야지? 절절한 느낌이 뭐였지? 뭘 메모했더라? 막막해서 길동무들께 유도 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쓰다 보니 장황함을 피할 수 없다. 여기까지 읽는 시간으로 이미 커피 한 잔이 식을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감사와 아울러 조금 더 읽어주실 것을 믿는다.
오르가스 백작이 사후에도 변함없이 성당 재정에 공헌할 수 있게 한 것은 그야말로 엘 그레코의 공헌이 절대적이다. 그는 이 그림에서 현실과 상상, 지상과 천상을 그렸다. 천사와 성인을 그리고, 왕과 사제를 그렸다. 매장되는 죽은 오르가스 백작과 천상으로 오르는 그의 영혼도 형상화했다.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작품에 적절히 등장시키고, 장례식의 성가대와 천상과 천하의 조문객들 또한 놓치지 않고 그렸다.
특별한 부분이 바로 거기 있다. 지상 조문객들의 면면이다. 엘 그레코는 조문객들로 당시 스페인의 저명한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이 실제 인물들을 등장시키기 위해 엘 그레코는 이들을 실제 스케치했다고 한다. 조문객 중에는 화가 자신도 있고 그의 아들 호르헤이도 있다. 호르헤이의 주머니에 걸친 손수건에 1578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바로 호르헤이가 태어난 해라고 한다.
그림 한 점에 이야기에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다.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너무 생생한 이야기이고 모두가 관심을 가질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 그림을 보기 위해 그림 속 인물들의 후손부터 지역 사람들, 성지 순례자들, 화가들, 문화관련 종사자들까지도 기꺼이 찾아온다. 천혜의 요지 톨레도의 한 성당 안에서 시간이 흐르고 인걸은 바뀌어도 변함없이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며 이야기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톨레도, 나는 톨레도를 떠나며 톨레도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책을 샀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또 다른 톨레도에 대한 기록들을 살피며 생각했다. 도대체 몇 권의 책이어야 톨레도 이야기를 다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쯤해서 톨레도 이야기를 마치며 톨레도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지우련다.
산토토메 교회의 훌륭한 탑, 구 시가지를 돌아나와 건넌 알깐따라 다리(Puente De Alcantara)의 멋진 인상을 그냥 쉽게 제외한다. 오랜 시대에 걸쳐 명성을 얻어온 톨레도의 명검에 대한 인상, 골목길에 둘러서서 나눠 먹기 체험을 해봤던 쿠키 마사판(Mazapan)과 같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모른 척 넘어 가리라.
하물며 꼭 가보고 싶었으나 가보지 못한 알까사르(Alcazar), 꼭 숙박을 해보고 싶었으나 실행하지 못한 스페인 최고의 전망과 품격을 지닌 호텔 톨레도 파라도르(parador), 그리고 타호 강변과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난 산책길 등은 애써 들먹여 아쉬움을 남길 필요 무엇 있으리. 하여 나는 다시 컴퓨터 화면 가득 톨레도 사진들을 띄운다. 길동무의 경건한 기도 모습을 사진으로 다시 새기고 톨레도 골목길에 흘린 길동무의 깔깔 웃음을 이젠 거둔다.
하나 덧붙일 말이 있다. 마드리드에서 하루가 주어지면 반드시 톨레도에 가라. 마드리드에서 3일이 주어지는가? 그 또한 반드시 톨레도에 가라. 톨레도는 그 3일을 거뜬히 충족시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