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왕국 국기 하강식. 1898년에 미국에 강점됐다는 상징적 표시로 거행된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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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뒤에 미국은 일본의 조선 강점을 돕는 조건으로 동아시아 해양지역 지배에 대한 일본의 협력을 얻어내고, 일본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뒤인 1921년에는 워싱턴회의를 통해 일본·영국·프랑스와의 협력 하에 태평양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했다.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세계패권 장악에도 바닷길 지배가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같은 바닷길에 대한 지배력을 기반으로 미국은 경제적 의미의 세계 최강에 오른 데 이어, 1945년에는 정치적 의미의 세계 최강에도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이후로 바닷길에서 중대한 사정변경이 생기고 있다. 이 변화로 인한 악영향은 미국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미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바닷길을 지배한 양대 축은 서유럽(영국·프랑스 등)과 미국이었다. 그런데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서유럽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양대 축의 지배가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 서유럽의 위상 변화는 바닷길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런 위상 변화가 서유럽의 약화는 물론이고 양대 축의 동반 약화까지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중반부터 바닷길에서 나타난 중대한 사정변경은 서유럽에 대한 도전이 드세졌다는 점이다. 서유럽-아프리카-아시아 항로에서 서유럽에 대한 도전이 강해진 것이다. 아프리카는 제3세계로 똘똘 뭉치고, 중동은 미국과 서방세계에 도전하고, 동아시아는 해상무역을 통해 서유럽의 경제력을 잠식했다. 거기다가 이 길의 동쪽 끝인 동아시아에서 1960년대에는 중국이, 19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이 핵무장 카드를 들고 나와 미국과 서방세계를 곤혹스럽게 했다.
서유럽-아프리카-아시아 항로에서는 또 다른 문제점이 생겼다. 과거에 서유럽인들이 안정적으로 관리하던 이 항로는 오늘날 해적의 온상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 서해안의 토고 및 나이지리아 해역, 아프리카 동부의 소말리아 해역, 홍해, 방글라데시 해역,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해적 출몰이 잦은 것은 이곳들에 대한 서유럽의 통제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닷길에 대한 서유럽의 지배력이 약해짐에 따라 미국-서유럽 협력체제에 기초한 세계 지배 시스템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이것은 트럼프의 나라가 행사하던 세계 지배권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아시아와의 협력, 그게 트럼프가 살 길이런 상황에서, 태평양 서쪽 연안의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바닷길의 한쪽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과거에 서유럽이 차지했던 양대 축의 한쪽 자리를 동아시아 국가들이 메워 가고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태평양시대라는 것은, 동아시아가 바닷길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미국이 세계 패권을 이어가자면, 동아시아와의 협력체제를 새로이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협력체제라는 것은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 차별적이 아닌 대등한 관계에 기초한 동반자적 협력체제를 말한다. 이런 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면, 미국은 바닷길에 대한 지배력을 계속 이어갈 수도 없고 세계 패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도 없다.
하지만, 미국은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제껏 핵우산과 MD(미사일 방어체계)를 앞세워 동아시아를 통제하거나 압박해왔으니, 동아시아와 새로운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문화적·인종적 불일치도 협력체제 구축에 방해가 되고 있다. 서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미국과 이질적인 지역이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동아시아를 바닷길의 새로운 파트너로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패권을 이어간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동아시아 침탈을 기반으로 부강해진 미국이, 동아시아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트럼프는 유세 과정에서 한미동맹이나 미일동맹에 대한 불신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동아시아와의 협력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떠들어댔다. 물론 대통령 취임 후에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머릿속에는 동아시아와의 협력에 필요한 마인드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니 트럼프 집권 이후에는 미국의 세계패권이 한층 더 약해질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위기의 미국을 구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이 핵우산과 MD를 앞세워 동아시아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 한편, 동아시아에 대한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동아시아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한다면, 동아시아와의 협력체제를 기초로 태평양 바닷길을 포함한 전 세계 바닷길에 대한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이제껏 했던 말들을 죄다 주워 담고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전향적인 동아시아 정책을 지향한다면, 기울어가는 미국을 되살리는 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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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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