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봉투지난 10월 중순, 검찰의 기소 이후 재판관련 서류가 집으로 송달되었다. 공소장과 국민참여재판신청서, 피고인 의견서 양식 등이 담겨있었다.
강홍구
인권과 법을 공부하며 한때 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법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공익은 뒷전이고 인사권자만 바라보는 직장인들, 출세욕에 눈이 먼 정치꾼들이 종종 보였습니다. 이들은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자신의 권한을 남용했습니다.
준사법기관으로서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해야 할 잣대는 신장개업 홍보 인형처럼 춤췄습니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여권 실세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했습니다. '여당 공천 개입 파문'의 주인공 최경환·윤상현 의원 등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까불면 안 된다니까", "이거 너무 심한 겁박을 하는 거 아니냐" 같이 녹취록을 통한 구체적 증거가 있어도 답은 이미 무혐의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정반대로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와 야당, 심지어 시민들이 보낸 글을 편집했을 뿐인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에게는 과하고 엄격하게 법을 적용했습니다.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라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준 취지가 무색해졌습니다. 사실 권력자가 "물라면 무는" 검찰의 행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권력자의 충견으로 활약한 '흑역사'가 어마어마합니다. 안기부를 상전으로 모셨던 과거로 돌아가고픈 걸까요?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이틀 앞두고 시민단체 활동가 22명을 굴비 묶듯 엮어 재판에 넘겼습니다. 저도 그 '공동정범'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공소장은 총 58쪽이었는데 기소된 22명의 인적 사항을 12페이지에 걸쳐 나열했고, 나머지 46쪽 분량에는 검사의 주장이 담겨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며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겁니다. 마이크와 앰프를 이용해 기자회견을 빙자한 낙선 목적의 불법 집회를 벌였으며, 피켓과 현수막, 낙선증 등을 '게시'했고 발언 등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겁니다.
선거라는 축제의 주인공인 유권자들이 자신의 뜻을 전달한 게 무거운 처벌을 받을 일인가요? 비선 실세로 다양한 이권을 챙기며 나라를 쥐락펴락 한 분은 고작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사건을 축소해 주는 판국에, 총선넷 활동가들은 꼬투리 하나라도 일단 물고 늘어지겠다는 검찰의 이중 잣대를 보니 제가 이러려고 활동가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선관위는 안내 공문을 통해 기자회견 형식의 반대후보 발표가 가능하다고 밝혔고, 총선넷은 이에 따라 낙선운동 기자회견을 했을 뿐입니다. 유사 시민단체들도(관변단체) 맹활약했지만, 유독 총선넷만 표적 수사에 무더기 기소까지 당했습니다.
월드피스자유연합과 4대개혁추진국민운동본부는 28명의 야당 후보를 대상으로 '확성장치'를 사용해 수차례 옥외기자회견을 했고, 시민유권자운동본부는 특정후보자의 유세장에 찾아가 '현수막'을 사용하며 수차례 '좋은 후보 인증패수여식'을 진행했지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공소장을 패러디하자면 내년 대선에서 여권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시민단체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표적수사를 한 것 아닌가요.
'표적수사' 검찰, 시민을 이길 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