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추모 리본 세월호 희생자 추모 노란리본에 새긴 글자마다 모두 ‘詩’다. 이런게 바로 ‘진짜 詩’다.
정기석
문학은 공유재로, 시인 조차 공익적 직업인이 될 수 있도록 한국은 등단한 시인이 수만 명이 넘는다는 '시인공화국'이다. 역시 세계에서 시민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한다. 노벨문학상도 아직 받지 못한 나라로서 이건 자랑이 아니라 조롱처럼 들린다. 시인을 제품 찍어내듯 마구 양산하는 마치 '시인공장' 같은 문예지들도 적지 않은 게 우리 문단의 비정상적인 현주소다.
그런 '시인공장' 같은 문예지의 사정은 알고 보면 사실 딱하다. 전혀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매달 1천여 부 정도 문예지를 발간하려면 편집, 인쇄, 제본, 운영비, 인건비 등 적어도 1000만 원 이상 경비가 들어간다. 그래서 가난한 문예지 처지로 문단의 오랜 미풍양속 관행처럼 굳어온 정신과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등단자들끼리 십시일반 하는 방법이다.
즉, 등단한 신인 당선자가 책을 어느 정도 구입해줘야 그나마 제작비, 운영비를 맞출 수 있다다. 물론 소수의 시인이 그 많은 책을 다 구매할 수는 없으니 '다수 시인의 양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물론 돈 많고 권위 있는 특정 문예지처럼 엄격한 심사기준과 높은 장벽을 치고 일 년에 두서너 명의 시인만 등단시키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 그래서는 수지가 맞지 않아 당장 문을 닫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문예지도, 시집도 돈 주고 사보지 않는 데 '시인공장'은 다른 도리가 없는 필요악이라는 것이다.
나도 '시인(詩人)'이다. 10여 년 전 어느 지방의 신생 문예지에서 얼떨결에 등단을 당했다. 여기서 당했다는 표현은 자의가 반, 타의가 반이었다는 뜻이다. 그때 고단하고 가난한 유목형 귀농인의 불우한 신세로서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절박했다. 남의 글이라도 대신 쓰는 유령작가로나마 품을 팔아야 했다. 그래서 제대로 글 값을 받으려면 문인 등단증이 긴급히 필요했다. 그러나 욕심이 지나쳐 그때 순간적으로 사리분별력을 상실했다. 제 주제와 분수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사실상 문턱이 하나도 없는 '시인공장' 같은 지방 문예지에서 '시인 완장'을 납품받은 것이다. 후회했을 때, 주문 취소나 반품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최근 다시 두 번째 등단을 했다. 일 년에 서너 명 밖에 시인을 생산하지 않는 '시인 농장' 같은 지방 문예지다. 그렇게 생산성이 낮아서 어떻게 운영하는지 좀 걱정되는 곳이다. '시인의 직업화 연구용역 보고서'로 당선 소감을 대신했다. 추문의 유혹이나 생계의 위협이나 휘말리지 않고 문학을 제대로 하려면, 문학은 공유재가 되고, 문인은 공익요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래야 '시인'조차 당당한 직업이 될 수 있을테니까. 그래야 조지훈 시인의 4.18의거 기념시 같은 총이나 칼같은 시를 세상에 당당히 타전할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