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가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디자인한 보석
길동무
유형별로 작품들이 배치된 방과 방을 지나면 복도가 이어지고, 작품을 보고 느끼며 통로를 지나면 다시 방으로 이어졌다. 상상력을 간단히 비틀어버리는 표현력, 정형화를 가뿐히 밀쳐내는 자유롭고 다채로운 필력, 각종의 오브제를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펼쳐놓은 입체와 설치 작품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모두는 살바도르 달리를 왜 초현실주의 거두로 평가하는지 담담히 설명하고 있었다. 사진 속 달리처럼 드러난 실제로 증명하고 있었다.
"달리의 대표작 대부분이 이 극장 박물관보다 세계의 손꼽히는 미술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섭섭한 일이 아니었다. 대표작들에 몰두 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습작들이 있어서 좋았다. 박물관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꾸며버린 달리를 실감 나게 들여다볼 수 있는데 더 무엇을 바라랴.
살바도르 달리, 그는 참 전천후 예술가였다. 회화를 기본으로 조각, 판화,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 미술, 영화 제작과 연극, 사진, 패션과 보석 디자인 등 가능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 퍼포먼스를 즐기고 강연을 하며, 시와 산문을 쓰기도 했다. 1941년 서른여섯 나이에 탈고한 회고록이 지금도 명저로 회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예술 심상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쫓겨남으로써 오히려 그는 진정한 초현실주의 작가의 표상이 되었고, 거침없는 기벽과 언행들이야말로 광기를 즐기는 것이 진정한 광기임을 시사했다. 자신의 삶을 그쯤 확신하면서 꿈을 펼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나는 일생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 "초현실주의를 현실에 융합시키지 않는 한 아무 가치가 없다."달리의 어록 중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비수 같은 말들이 많다. 끊임없이 추구한 가상의 초현실 세계를 실체가 있는 작품으로 드러내면서 초현실과 현실을 넘나들며, 마침내 그 경계마저 무너뜨린 결과이리라.
달리의 말은 명쾌하다. 그리고 비범하다. 그의 작품들은 흥미롭다. 정교한가 하면 무질서하게 흐트러진다. 투필성형(投筆成形), 붓을 던지면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바로 거기 살아있었다. 그러기에 들여다볼수록 상상력은 배가 되었다. 달리의 예술이 "시대와 인종 장소를 뛰어넘어 미술 애호가와 창작 선상에서 고심하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것이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게 한다.
박물관 출구를 나오자 몰려든 시장기가 달리 삼매에 빠진 시간이 꽤 길었음을 알린다. 길동무 일행은 서둘러 극장 박물관 근처 레스토랑을 찾아 늦은 점심을 해치웠다. 다음 일정도 달리다. 오직 그의 여인 갈라와 둘만 살았을 뿐 공개를 하지 않았다던 집, 카다케스의 까사 달리를 정중하게 방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