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변호사
이희훈
지금은 '파산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를 처음 만나게 된 건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한 일이다. 2014년 8월의 일이었다. 박준영 변호사와 내가 인연을 맺게 해준 사람이 찾아왔다. SBS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주시평 피디였다.
당시 나는 국회 김광진 의원실에서 의무복무 중 사망하는 군인들의 명예회복과 관련한 입법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가 찾아오겠다고 하니 처음엔 군 의문사 관련 프로그램을 촬영하자는 것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목적은 다른 것이었다.
주 피디는 내가 오래전부터 관여해 온 '완도 존속살인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다시 한 번 다뤄보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나는 주 피디의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그러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랬다. 그 거절이 '박준영'이라는 변호사를 만나게 된 인연의 시작이었다.
무기수 김신혜의 무죄를 확신한 이유그동안 나는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분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상담하다 보면 결론은 거의 대부분 자기 사연을 방송으로 내 보내 줄 수 있냐는 하소연이었다. 그렇기에 방송사 피디가 '스스로 찾아와' 방송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는 거절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고맙다며 인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먼저 찾아와 제안까지 했는데 이를 거부했으니 담당 피디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내가 김신혜씨의 사연을 처음 알게 된 때는 2000년 12월 28일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반부패 국민연대'(현 한국투명성기구)라는 시민단체에서 국민신문고 국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단체 홈페이지로 한 통의 이메일 민원이 접수되었다. 사연은 이랬다.
"안녕하세요. 누나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누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누나와 여동생을 아버지가 성추행하여 누나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합니다. 누나는 현재 무기징역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데 저희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어 애만 태우고 있습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19살이었던 김신혜씨의 남동생이 보내온 이 한 통의 이메일은, 이후 만 16년의 시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내가 내려놓지 못한 사건이 되었다. 이후 나는 짧은 몇 문장의 글로 되어 있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자 당사자인 김신혜씨와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또 전남 완도의 사건 현장을 수도 없이 찾아갔다. 경찰 등 수사기관이 외면한 이 사건의 또 다른 증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아버지를 살해한 진범은 김신혜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확신한 것은 김신혜씨의 주장 때문만이 아니었다. 경찰과 검찰 등의 수사 결과 자체가 엉터리였다. 재판부가 이러한 잘못된 결론을 토대로 유죄 선고를 내렸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저 무고한 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고자 했을 뿐이다. 이를 위해 때리고 심지어 증거를 조작하기도 했다. 그냥 필요한 범인을 만들기 위해 '김신혜'라는 사람을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처음 찾은 곳이 2001년 당시 SBS 시사 프로그램이었던 <뉴스 추적>의 정명원 기자였다. 고맙게도 정 기자는 김신혜씨의 억울함에 공감해 줬다. 그렇게 해서 김신혜씨 사연이 그해 <뉴스 추적>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김신혜씨의 억울한 사연을 방송으로 접한 시청자들이 이후 이 사건을 수사한 완도경찰서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맹폭하기도 했다. 그러자 완도서 측은 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나에게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경찰서장 명의의 입장문을 밝히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글을 본 후 내심 기뻤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신혜씨 사건은 그 당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끝난 상태였다. 따라서 더 이상의 법적 절차는 남은 것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남은 방법은 재심 청구인데, 이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기대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완도서 측이 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다시 한 번 이 사건의 진실을 법정에서 다퉈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피소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김신혜씨의 억울한 진실이 풀린다면 그것 역시 인권운동가로서의 숙명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완도경찰서 측은 그 후 아무런 법적 대응하지 않았다. 처음 완도서 측이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밝힐 때 나 역시 반부패 국민연대 차원의 공식 성명으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기꺼이 화답하겠다'고 응답했는데 그 후 지금까지 소송 제기는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김신혜씨의 무죄를 확신한 건지도 모른다. 김신혜씨를 존속살해범으로 수사했던 그들이 어떤 경위로 나를 상대로 한 소송을 포기했는지 여전히 알 순 없지만 다만 적어도 그들은 스스로가 틀렸음을 인정한 것이 아닐까 싶던 것이다. 그게 나의 확신이었다.
나는 왜 '그것이' 피디의 방송 협조를 거절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