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빈 동지> 겉표지.
책담
"제레미 코빈은 하원 재임기간 중 모셨던 당수에게 하나같이 불충했다." - 앨런 존슨 전 내무장관"그는 노동당 주변부, 영국 정치의 주변부에서 32년을 떠돌았다." - 톰 볼드윈"제레미 코빈은 도대체 왜 토니 블레어와 같은 당에 있을까?" - 폴리 토인비제레미 코빈. 올해로 67세인 영국의 제1 야당인 노동당의 신임 당대표이다. '옥스브릿지 (옥스포드 + 캠브리지)'로 대표되는 영국 주류 정치인들의 사이에서, 고졸인데다 십대 때부터 노동당 당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흙수저' 정치인이었던 그는 전혀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던 코빈은, 노동당 내에서도 소수였던 '진보 좌파'의 노선을 '외롭게' 걸어왔다.
그는 1982년 런던 북부의 북이즐링턴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그 지역에서 줄곧 '하원의원'으로 활동해 왔다.
노동당이 '신노동당 노선'을 내세우며 중도쪽으로 지향을 옮겨가는 와중에도 그는 당의 주요 정책들 대부분에 반대표를 던지면서도 '노동당원'으로 남아 있었다. 자그마치, 30년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제레미 코빈은 지치지 않았으며, 뜻을 굽히거나 타협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싸우지도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놀랍다.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되었지만, 그는 '평등교육'에 대한 신념을 지키고자 부인이 아들을 '사립교육기관'에 보내려고 하자, 그의 두 번째 결혼을 끝내야 했다. 이혼한 후에도 서로 교류하며 지냈던 것을 보면, 부부의 문제는 결국 '교육에 대한 신념의 차이' 때문이었다.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신념'에 중심을 디딘 채 같은 자리를 지켰다. 변하지 않고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필요할 때, 누구든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그대로 거기'에 있었으니까!
"자기 신념이 그토록 확고한데 왜 바꾸겠는가. 그는 결코 뭘 바란 적도 없다. 하원 내 노동당으로부터 상당히 초연하게 의원 활동을 해왔다. 의석도 안정적이고 연륜도 쌓여가는데 뭣 때문에 변하겠는가." - 데이비드 위닉"30년 만에 처음 그곳에 가보았는데, 제레미도 있었고 그의 연설도 있었다. 그때 퍼뜩 든 생각은 30년 전에 했던 연설과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 마거릿 호지 (p.252)최근 들어 '평생의 신념'을 꺾지 않은 채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새로운 세계의 선두주자인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오래된 세계, '전세계' 노동자들의 상징인 영국 노동당의 '깜짝 놀랄 만한' 스타인 제레미 코빈이 그들이다. 하지만 2016년 이전까지, 나에게 그들은 철저히 '숨겨진'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전혀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스타 되거나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겠다는 생각 안 해그들은 지금껏 어디에서 숨어 있었던 것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너무도 궁금했고, 버니 샌더스의 인생에 대한 책을 읽은 후 (관련 기사 :
"끈질기게 우리 편일 사람, 어디 없나요?"),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코빈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오늘 소개하려는 <코빈 동지>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제레미 동무>라고 할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이 버니 샌더스를 '동무(comrade)'라고 불렀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그동안 노동당에 처절하게 실망한 적이 많았다. 특히 이라크전 때 그랬고, 그보다 앞서 베트남전쟁 때 그랬다. 그래도 그동안 이룩한 일들을 생각해보고 노동당이 수백만 유권자들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점도 생각하면서 그냥 남아 있다. 늘 그래왔다. 토니 벤과 수없이 여러 번 한 얘기가 떠오른다. 벤이 그러더라. "있잖아, 동지. 우리 그냥 있어야지. 그렇지 않은가?"' - 제레미 코빈코빈이 노동당의 새로운 대표가 된 것이 지난해 9월이니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에 비해 책이 늦어진 것이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코빈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책이 쓰여지는 것을 반대'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는 자신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까지도 책과 관련된 인터뷰에 응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만큼 코빈은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호받고자 하며, 당대표 선거에 나가면서도 '가족의 사생활'을 가장 우려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철저하게 '정치인'이었으나 본인 스스로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겠다거나, '스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지지하는 모든 시위에 참여했고, 노동당의 진보적인 노선을 흐릿하게 하는 모든 정책에 반대했다. 그는 항상 '그의 자리'를 지켰고, 그의 지역구 주민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코빈을 찾아와요! 그는 항상 우리의 얘기를 들어줘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코빈은 블레어가 노동당 강령 제4조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격렬히 반대했다. 그 조항에 따르면, 노동당은 "육체노동자든 정신노동자든 모든 노동자들이 성실한 노동의 대가를 누리고 생산, 분배, 교환의 수단에 대한 공유를 바탕으로 가능한 한 가장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제4조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 노동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조항이었다." -p.161그는 '32년이나 노동당의 주변부를 헤매'면서도, 중심부의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자신의 뜻을 '중앙'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괴감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정치 경험과 고민을 통해 결론을 낸 '자신의 신념'을 지켜냈고, 그것이 그의 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이렇게 지켜낸 자부심은 평생의 동지였던 '소수'의 친구들을 통해 공고해졌고, 어느 누구와 싸우지 않고도 자신을 지켜냈다.
그렇게 그는 예순일곱이 되었고,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영국 노동당 진보 노선의 상징이 되었다. 놀랍다! 싸우지 않고, 버티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도, 그는 자신을 지켜냈다. 부럽다.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당장, 내일부터 싸우지 않겠다 결심하는데, 과연?)
노무현 연설문과 닮은 꼴인 코빈의 연설문"저는 현 정부가 추진한 정책들 때문에 다른 어느 지역 못지않게 고통을 받은 런던 지역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하원에서 발언을 하겠습니다. 실업률이 천정부지로 치솟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기회도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품지 못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시 다룰 겁니다. 제 지역구와 같은 지역에서 가장 삶이 팍팍하고 실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p.137코빈이 1983년 7월, 북이즐링턴의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후, 처음으로 하원에서 했던 연설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노무현 대통령이 1988년 7월 초선의원 시절 첫 번째 대정부 질문에 참여해서 했던 연설의 일부이다. 그들의 가치는 전혀 다르지 않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그들의 투쟁 또한 전혀 다르지 않았다. 2016년 지금, 그 둘의 현재는 너무도 달라져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책에서 묘사하는 코빈의 선거운동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2002년의 '열기'를 떠올리게 했다. 정치에 등을 돌렸던 다양한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광장으로 불러들였고,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 정치로 끌어들였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5000원(3파운드)을 내고 당원이 되었으며, 4만 원(22파운드)의 정치자금을 후원하며 선거를 도왔다. 그가 가는 곳 어디든 지지자들이 몰려들었고, 자원봉사자가 넘쳐났으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활기가 가득했다. 구별할 수 있는가? 이는 우리가 떠나보낸 2002년의 대한민국이었고, 2015년의 영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