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총회를 진행하고 있는 지각생원래 개그를 좀 하는데 이날은 긴장한 탓인지 별로 안웃겼음.
문세경
며칠 전, 그 때 그 '지각생'으로부터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 (
http://ictact.kr)을 만든다고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시국도 하수상하고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 모르겠는데, 거기라도 가서 자릿수를 채워주자'는 생각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 날이 그제(11월 1일)였다.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이 뭐지? 또다시 IT에 문외한인 나를 한탄하면서 자료집을 먼저 보내 달라고 했다. 창립총회에서 볼 자료집은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므로 그 전에 만든 자료집이 있으면 보고 싶다고 했다.
자료집을 보니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활동가를 위해 컴퓨터 수리와 교육 및 기술 지원을 사회적협동조합의 형식을 빌어 더 광범위하고 질적으로 수준 높은 IT기술 지원 체계를 접하게 한다고 돼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해 본 나 역시 모든 일을 컴퓨터로 했기 때문에 활동가에게 PC는 내 몸의 수족과도 같은 존재다. 조금 오버하면 단체의 '심장'이었다. 왜냐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단체는 단체의 모든 활동을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전달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IT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정보전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전에 나와 있는 IT의 정의대로 '프로그램의 개발, 저장, 처리, 관리'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컴퓨터를 너무 좋아해서는 안된다.
머리도 식힐겸 컴퓨터와 바둑을 두었는데 갑자기 내 머리가 '삑사리'가 나서 컴퓨터에게 지면 땅에 떨어진 자존심을 누가 책임지느냔 말이다. 거기다 컴퓨터하고는 술을 마실 수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인공지능이 대부분을 해결해 주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같이 술 마셔주는 컴퓨터가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일했던 '동자동사랑방'에서도 어느 날 '컴'이 말을 듣지 않았다. 대표는 A/S를 불러 해결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 때 번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앞에서 말한 '지각생'이다. 허우대가 멀쩡한 지각생은 그 때까지만 해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않았고, 단체를 돌아다니며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해 주고 있었다.
지각생은 컴퓨터를 수리만 해 주고 오지 않았다. "컴퓨터 고장의 가장 큰 원인은 컴퓨터 내부에 쌓인 먼지"라면서 켜켜이 쌓인 먼지를 정교한 솔을 이용해 깨끗이 청소해주고 갔다.
이런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 돈 없는 단체들은 지각생을 찾았다. "돈을 조금 밖에 못 주는데 홈페이지 제작을 부탁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면 착한 지각생은 "그러마" 하며 거절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지각생을 불러 고장난 컴퓨터를 부탁하고 잘 모르는 컴퓨터 용어를 묻기도 했다.
컴퓨터를 다 고쳐준 지각생에게 나는 열악한 재정 상태를 들이대며 "미안하지만 수고비를 술로 대신 하면 안될까?" 하며 운을 뗐다. 내 말에 지각생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답을 대신 했다. 암묵된 합의로 수고비 대신 술로 퉁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