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주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정운현 선배가 정빈(丁彬)이란 필명으로 2016년 1월 1일 발표한 소설로 이미 박근혜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 국민을 개와 돼지로 취급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상황이 마치 예언처럼 예고되어 있다.
정덕수
이 정도 내용이면 저자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거나, 어쩌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형편없는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역사 연구와 저술을'에서 짚이는 바도 있었다. 그리고 피플파워에서 지난 2015년 연말 무렵 "조선에도 여왕이 있었다"며 2016년 1월 1일 발행한 소설의 작가 소개를 보는 순간 떠올린 얼굴이 있다.
평소 "형님"이라 부르고, 서울에 들릴 일이 있을 때 "막걸리 한 잔 하시자" 전화를 드리면 대부분 흔쾌하게 응해주시는 분이다. 그런 까닭에 소설 <혜주>의 편집자에게 "작가 서명 받아주면 책을 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편집자는 "작가를 모릅니다"라 딱 잡아뗐다.
읍내 서점에서는 혜주를 구하기 어려워 차일피일 미뤄졌다. 지난 늦봄 완주군을 다녀오다 인사동엘 들리며 몇 분과 약속을 잡았을 때 짐작으로 저자일 거라 생각했던 형님께 "혜주의 작가가 형님이시죠?"라 하니, "정형 어떻게 알았소? 그래요 맞습니다. 이제 저자를 솔직히 밝힐까 생각하고 있었요"라 했다.
소설 혜주는 그렇게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월 21일 오후 원주시에서 저자로부터 직접 받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먼 거리 마다하지 않으시고 어리석은 아우를 위로하시고자 찾아주신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2권의 저서도 함께 가져오셨으니…
며칠 집안일을 정리한 뒤 책을 펼쳤다.
1부 잊혀진 세월의 '지독한 가뭄'부터 시작해 4부 참극의 말로 마지막 에 해당되는 '파멸'까지 단숨에 읽으며 창엽문에 대해 한 번쯤 언급되리라 싶은데 없었다. 조선조 27명 왕에 대한 역사를 28명의 왕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실록에서 지워진 여왕 혜주를 이끌어가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음직한데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놓치지 않았나 싶어 읽기 시작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5부 기억과 망각을 읽으며 맨 마지막에 '창엽문(蒼葉門)'에 대한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창엽문(蒼葉門)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삼봉 정도전이 지은 종묘 외대문 이름이다. 대부분의 궁궐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성벽위에 세운 문도 현판이 있으나 종묘의 외대문엔 현판이 없어 종묘를 찾은 이들도 창엽문에 대해 모를 수 있다.
창엽문이 왜 혜주란 소설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직접 이야기를 만나면 저절로 풀어진다.
삼봉 정도전이 조선의 4대문과 궁궐의 문들에 이름을 지으며 함께 지은 창엽문(蒼葉門)은 풀이 그대로 '푸른 잎의 문'으로 조선이 푸른 잎처럼 번성하라는 의미로 이성계 또한 받아들였으리라.
하지만 여기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이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미리 헤아린 정도전이 이를 누설하지는 않으면서도 기록으로는 남긴 행동이라 보자.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혜주에서 작가가 그려나간 4년의 기록을 딱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통수권자와 대비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남파와 북파로 나뉘어 조정을 움직이는 대신들이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의 모습은 오히려 소설 속 대신들이 그나마 염치라도 있고, 백성을 두려워 할 줄 알며 해야 할 도리는 안다.
술사 노천을 일부에서 이 나라를 우습게 만든 최순실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술사 노천은 "딱 그만큼…" 되게 할 줄 알고 되게 만드는 재주라도 지녔다. 순현왕후와 회운사 주지 태허, 민상궁 사이의 이룰 수 없는 조건에서의 간절한 욕망과 함께 민상궁과 무극의 통정에서 혜주의 정인으로 무극이 연결되는 모습엔 드러내놓을 수 없는 그들만의 안타까운 애욕의 실태겠다 싶어 연민이라도 느껴진다.
혜주에서 두려운 건 따로 있다. 지난해 이미 탈고가 된 소설이라는 사실을 놓고 보면 정도전이 종묘의 외대문을 창엽문이라 명명한 것과 같은 일종의 예언이 적중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회운사에서 당일 저도 그 보고를 받았습니다만, 저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힘듭니다. 청년들은 헤엄쳐 나왔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했나요?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 헤엄도 하나 못 치나요? 그리고 섬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평소부터 물난리에 만전을 기했어야지요."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에 대해 했던 말과 혜주가 두물섬에서 발생한 사고를 보는 관점이 겹쳐짐은 지극히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