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대화 나누고 있다.
남소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7일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을 기회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손 보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야당에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등으로 촉발된 '최순실 게이트'를 덮기 위한 정략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문제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으로까지 확산됐는데도 같은 주장을 펼친 셈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현안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친인척 혹은 비선실세 대형비리가 대통령 임기 말에 예외 없이 터져나온다"라면서 "이건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제도적 결함 때문이기도 한다. 이번 사건은 개헌의 걸림돌이 아니라 개헌의 기폭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장관에게 권한을 나눠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대통령 개인에게 분권하라고 할 수 없다"면서 "그게(분권) 정(正)방향이라면 그를 분산시킬 새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고 평가되는 개헌론에 재차 불을 붙이는 한편, 이를 통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당의 '거국중립내각' 구성 요구를 되받아 친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전날(26일) "(대통령이)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하여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라면서 "국무총리에게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고 거국중립내각으로 하여금 내각 본연의 역할을 다하게 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그는 "우리는 이번 최순실 사건을 목도하면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와 폐해가 너무나 명백함을 공감했다. 개헌을 머뭇거릴 수 없다"면서 "지붕에 구멍이 뚫렸는데 그때마다 골판지를 대서 막겠나. 지붕 위에 올라가 구멍을 막고 방수처리를 하는 게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순실 비리(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손 보는 것"이라며 "야당과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으로 개헌 물 건너갔다? 난 걷어찰 생각 없어"당장, 이번 파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개헌으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또 이번 파문에 대한 책임을 박 대통령 등 정부여당이 아니라 제도 탓으로 돌리려 한다는 비판도 예상됐다. "국민들이 최순실 사건을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는 "제가 개헌을 얘기한다고 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회피하려거나 희석시키려는 것이 아니다"며 "대통령 임기 말에 여지 없이 대형비리 사건들이 반복되는 것을 깊이 생각해볼 때가 됐다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은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의도도 의심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에도 "새누리당은 (26일) 의원총회에서 총의로 특검을 결정하지 않았나"라면서 "그러나 동시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보자는 점을 말한 것이다. 저 혼자의 단견이 아니라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으로 많은 의견을 접했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에 대한 진상규명은 특검 등으로 진행하되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를 병행하자는 얘기다. 그는 브리핑 후 티타임에서도 "이 건으로 개헌이 물 건너갔다?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닌가"라며 "야당이 이번 사태 발생 후 개헌 논의를 걷어 찼는데 나는 걷어 찰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탄핵이나 하야 얘기도 나오는데 개헌을 주장하면 이런 여론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이게 피해가는 방식이냐. 아니지 않나. 야당이 개헌 필요없다고 하면 접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가 그렇게(개헌 논의할 때가 아니다) 말했다고 해서 그게 야당 (전체) 입장이 맞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번 사태만 아니라 개헌 등 모든 현안을 여야가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정 원내대표는 "최순실 사태만이 있는 것 아니지 않나. 경제·안보 상황, 개헌 얘기, 예산·세제·법률 처리에 대한 모든 정국 현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얘기하자는 것"라며 "방금 정세균 국회의장 전화 받았다. '빠른 시일 안에 만나서 논의하자' 했는데 저 좋다고 했다. 정말 가슴 열고 뜨겁게 대화해보자 이거다"고 말했다.
아울러, "여당도 책임이 있다, 제대로 감시를 못했다"면서도 여당 역시 이번 사태의 피해자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청와대에서도 비서진들이 모르는 일이 터진건데, '영문도 모르고 당했다'고 했다"면서 "여당 의원들도 최순실과 얼굴 본 적 있나, 대화한 적 있나. (최씨는) 유령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개헌 논의 '병행' 주장은 정 원내대표만의 것이 아니다. 앞서 이정현 당대표를 비롯한 당 최고위원들은 전날(26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결과, "최고위원들은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밝힌 임기 내 개헌도 국회 주도로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