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하는 박근혜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절대,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 것이 아니다. 누구나 '정국 돌파'용임을 짐작하지만, 그 시기 또한 절묘하다. 1972년 10월 17일 고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선포했고, 그로부터 44년 후인 2016년 10월 24일,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제안했다. 24일 오전, 2017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서다.
"개헌은 블랙홀"이란 박 대통령의 과거 발언도 떠오르지만, 시계를 좀 더 돌려보면 더 가관이다. 지난 2007년 1월 9일,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특별담화에서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해 어느 정치인이 목소리를 높인 비판을 소환해 보자. 구구절절, 마치 예언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오늘 개헌 발언을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민생경제를 포함, 총체적인 국정위기를 맞고 있고 선거가 일 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개헌논의를 하면 블랙홀처럼 모든 문제가 빨려 들어갈 수 있다.""정략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대통령은 남은 임기동안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끝까지 국정과 민생을 챙기고 국민과 나라를 걱정하는 책임 있는 정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개헌시기에 대해서는 각 당의 대선후보가 확정이 되면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은 후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짐작했겠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발언에 당일 직격탄을 날린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의 발언들이다. 임기 내내 "참 나쁜 대통령"이란 표현을 부메랑처럼 받아야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급기야 대선을 1년 여 앞두고 '개헌 카드'를 꺼내드는 무리수를 두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를 확인시켰다. 근데, 이번 개헌 발언은 한 마디로 '악질' 수준이라 더 나쁘다. 왜 그런지, 시정연설을 들여다보자.
"참 나쁜 대통령"의 돌려막기식 개헌 주장시작부터 현실 무시로 일관했다. "정부는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한 푼도 허투로 쓰지 않기 위해 막중한 책임감으로 나라살림 계획을 수립해 왔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미르·K스포츠 재단과 '최순실 게이트'의 한복판에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이게 어디 할 말인가.
연설 중반까지, 문화융성과 북핵, 일자리 경제와 창조경제에 대해 '아무말 대잔치'를 벌일 때까지만 해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수준이었다. 여전히 망가진 나라꼴을 보지 못하고 "밝은 미래" 운운하는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청와대 보좌진이나 측근의 직언이 전혀 통하지 않는 대통령이란 세간의 중평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꼴이었다. 그러던 차에, 후반부 개헌 발언이 시작됐다.
"또한,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이게 진짜 "정치일정" 때문인지, 국면 전환용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지 않을까. 향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결정이 날 사안이지만, 만약 4년 중임제로 개헌 시 박 대통령의 출마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런 거대한 미끼를 투척하는 이유가 '최순실 게이트'로 성난 민심과 달려드는 언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카드라는 것은 쉬이 짐작 가능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들고 나온 개헌의 필요성이 참으로 하찮고 또 반복적이다. 특별한 게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일부 정책의 변화 또는 몇 개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또 우리 정치는 대통령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체제로 인해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가 일상이 되어버렸고, 민생보다는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고 대외적으로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북한은 '몇 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수십 년 동안 멈추지 않고 있고, 경제주체들은 5년 마다 바뀌는 정책들로 인하여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와 경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과연 한국사회의 적폐가 비단 대통령 단임제 때문인가. 작금의 친박·비박 논란을 필두로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 민생보다는 정권창출에 골몰하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 아니던가.
공약 이행률은 바닥은 가깝고, 외교 성적은 꼴찌에 가까운 이 정권이 단임제가 아니었다면 달라졌을까. 북핵과 별개로 개성공단 중단과 같이 대북 정책을 급속도로 냉각시킨 주체 역시 박근혜 정권이지 않나. 어버이연합 게이트와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났듯이, 전경련과 대기업 돈을 마음대로 주무른 것도 결국 청와대이지 않은가.
"대통령 눈에는 최순실과 정유라 밖에 안보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