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하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운명적으로 만났다"면서 "유학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금봉에게 말하고 있는 박준호
정만진
그러나 준호가 간 뒤 금봉에게는 혹독한 시련이 밀려온다. 아들과 금봉의 사이를 알게 된 박진사 부부는 갖은 방법으로 악랄하게 괴롭힌다. 이윽고 그들은 금봉이 낳은 아이를 멀리 남의 양자로 보내버린다.
금봉은 아들을 찾아 온 나라를 배회한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생활고 때문에 화류계로 쓸려 들어갔다가 이윽고 서울의 유명한 카페인 파리를 경영하게 된다. 어느날 낯선 손님이 찾아와서는 여급에게 금봉을 불러달라고 한다. 박준호다.
"우리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운명적으로 만나고 있소"박준호는 아편 중독자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가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두 사람의 아들 박석규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여준다. 박준호는 금봉에게 아들을 찾으러 가자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죄인이오"하며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던 박준호는 이내 "기른 정을 내세워 아들을 내놓지 않으면 거액의 돈을 뜯겠다"는 속셈을 드러낸다. 금봉은 거부한다. 그때 박준호와 사실혼 관계인 여자가 칼을 들고 위협하면서 금봉을 찌르려 하자 박준호가 가로막다가 찔려 죽는 사태가 발생한다. 흥분한 여자가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며 다시 칼을 휘두르고,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금봉이 칼을 빼앗다가 여자를 찔러 죽이게 된다.
금봉은 법정에서 검사로부터 사형을 구형받는다. 그런데 금봉의 최후진술과 판사의 사형 언도 뒤 검사는 금봉이 자신의 어머니인 것을 알게 된다. 검사 박석규는 어머니 금봉을 붙들고 "제가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어 어머니를 상고심에서 지키겠다"며 울부짖는다. 금봉은 "아니다. 내가 죄값을 치러야 죽은 네 아버지와 저 세상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다"며 아들을 만류한다. 금봉은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아들의 통곡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금봉이 어머니인 줄도 모르는 채로 사형은 언도했던 검사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금봉을 붙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
정만진
제천시 누리집이 소개하는 박달고개 전설 |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 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졌고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 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 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보내고는 날마다 서낭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자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쫓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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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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