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김종성
이 일은 그대로 묻힐 뻔했다. 대신들은 이흥문의 행위가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들이 받아먹은 게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발설하지 않았다. 선물을 받지는 못하고 소문만 들은 관료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힘 있는 대신들의 눈치를 봤던 것이다. 질긴 육포처럼 뇌물공여의 효과도 이처럼 질겼다. 이랬기 때문에, 임금인 세종이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혼식 하나를 계기로 문제가 갑자기 불거지게 되었다. 당시, 세종을 모시던 내시 중 하나가 제주 여성과 혼인식을 올렸다. 이 여성은 이흥문을 안 좋게 보고 있었다. 결국 이 여성이 남편이 된 내시에게 이흥문 이야기를 했고, 내시가 세종에게 이 사실을 귀띔한 것이다.
세종은 이흥문이 임금에 대한 진상을 핑계로 육포를 잔뜩 끌어 모은 것에 대해서도 분개했지만, 육포 선물을 받은 대신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조정의 기둥인 황희와 김종서마저 받았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상을 핑계로 뇌물을 모은 이흥문의 행위는 처벌할 수 있지만, 육포를 선물로 받은 대신들의 행위는 처벌하기는 힘들었다. 그들의 숫자가 한 둘이 아닌 데다가, 음식은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벌의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이흥문의 행위에 대해 구체적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내시의 사적인 보고만 받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종은 의정부에 지시를 내려, 이흥문 사건을 논의하도록 했다. 이때는 관찰사나 사또의 비리에 대해서는, 구체적 증거가 없더라도 풍문만으로도 수사를 개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흥문 사건을 의정부에 회부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건을 다루게 된 의정부의 공직자들도 그 육포를 먹은 사람들이었다. 황희와 김종서는 의정부 소속이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덮고자 했다. 위의 <세종실록>에 따르면, 그들은 "풍문만으로도 수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관계 기관에서 보고한 것도 아니고 내시의 입에서 나온 말에 불과하니까 사건을 키우지 마시고 이흥문을 파직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라고 세종에게 건의했다.
이렇게 대신들은 '이흥문한테 형벌을 가하지 말고 파면하는 선에서 그치자'고 제안했다. 자신들이 받은 게 있기 때문에 이흥문을 비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종은 이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공직자들이 너도 나도 "나도 받았지", "저도 받았습니다"라며 고백하는 분위기였지만, 세종은 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흥문을 파직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세종을 격노하게 한 사실, "승정원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