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초등학교 퇴임식2016년 8월 31일 태안초등학교 40여 명 전체 교직원이 한 자리에 모여 아내에게 퇴임식 행사를 베풀어주면서 배우자인 나도 초대해주었다.
지요하
아내는 40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8월 31일 정년퇴임했다. 아내에게 축하와 감사를 표하는 마음으로 글을 하나 지어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면에 올렸다. '
평교사 40년...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글이었다(해당 기사 보기).
그 글을 읽은 한 방송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게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아내와 함께 출연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나는 고심 끝에 출연 결심을 하고, 또 어렵게 아내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 작가와는 세 번의 통화가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통화는 지난 추석 3일 전에 있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는 대로 담당 PD와 촬영 기자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구체적인 촬영 계획을 짜기로 약속했다.
그 작가는 내 아내가 40년을 채우고 정년퇴임을 했음에도 관례와는 달리 훈장을 받지 못한 사실에 특히 주목했다. 40년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감사하는 뜻으로 정부 훈장을 대신해 남편인 내가 아내에게 '감사패'를 주는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촬영팀은 우리 집에 와서 93세 모친을 모시고 사는 우리 부부의 생활 모습을 자세히 담는다고 했다. 신장 기능을 잃어 매일 복막투석을 하며 살아가는 내가 투석을 시행하는 모습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모습도 담고, 담임선생님의 퇴임 소식에 울음을 터트렸던 아이들이 보고 싶어 아내가 학교를 한번 찾아가는 그림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찍는다고 했다.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런 구성을 들으니 재미있는 내용이 될 것 같았다. 그런 계획에 나와 아내는 군말 없이 동의를 했다.
그런데 그 작가와 긴 통화를 마치고 났을 때 아내가 이상한 말을 했다. '헛 공사'가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아내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헛 공사라니, 왜?""그 작가가 뭔가를 놓치고 있어요. 내가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것 때문에 훈장 대상에서 제외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또 당신이 매주 월요일마다 광화문 시국미사에 참례하면서 시국에 관한 글을 많이 쓰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그래서…?""그래서 담당 PD와 촬영 계획서를 만들긴 하나 본데, 틀림없이 윗선에서 결재가 나지 않을 거예요. 윗선에서는 거르는 장치가 있을 거라고요." "정말 그러려나?""그러니까 방송에 나간다고 아무에게도 미리 말하지 마세요.""에이, 설마…!"나는 아내의 말을 어겼다. 아내가 마지막 5년 동안 봉직했던 학교의 교장산생님과 교감선생님께 조그만 추석 선물을 드리려고 아내와 함께 학교를 찾은 날이었다. 퇴임 전이 아닌 퇴임 후의 '감사 표시'임으로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을 거라는 농담도 하며 차를 마시다가 나는 입방정을 떨고 말았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촬영팀과 함께 와서 아내가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실도 찍을 테니, 미리 허락해주실 것과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학교를 나오며 아내에게서 한소리 들어야 했다. 헛 공사가 될 일인데 그걸 못 참고 입방정을 떨었다며 아내는 내게 눈을 흘겼다.
"두고 보세요. 내 말이 맞을 테니! 방송국에서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을 거예요. 혹시 모르죠, 그 작가가 미안하다는 사과 전화는 할지…."블랙리스트는 내게도 냉엄한 현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