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2016.10.13 젠더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포럼 3강 강의 자료
김은희
기본소득은 젠더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것인가?기본소득이 젠더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기본소득의 지급이 여성을 가정에 안주하게 하고, 이로 인해 성별분업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김은희 위원장은 기본소득이 가구가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지급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성은 가구의 일원이나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닌, 시민 개인으로서 기본소득을 받는다. 캐롤 페이트만(Carole Pateman)은 '여성이 시민으로서 기본소득을 받음으로써 시민으로 인정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 기본소득으로 인해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여가와 재생산노동 등이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수 있다. 김은희 위원장은 지금의 장시간 근로는 '가정에서 재생산노동을 담당할 여성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재생산노동에 쓰일 시간이 늘어난다면, 재생산노동은 성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받는 이중부담은 완화될 것을 기대해볼 수 있다.
포럼 3강 토론자로 참여한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은희 위원장과는 견해가 다르다. 기본소득의 개별성, 즉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특징이 젠더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리라 보는 것은 다소 비약이다. 기본소득은 가사임금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전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가사노동 등 재생산노동에 대한 가치부여라고 볼 수 있는가? 여성이 '그림자노동'을 떠맡고 있는 상황을 기본소득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소득이 여성의 해방에 특별히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 절차가 남았다. 만약 기본소득론자가 '모든 인간의 해방이 이루어지면 여성의 해방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굳이 기본소득과 함께 페미니즘을 말할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적 급여 확대vs.기본소득 도입장지연 연구위원은 강연에서 제시된 기본소득 시행단계 중 청년, 노인, 장애인, 농어민을 대상으로 하는 1단계 기본소득은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사회수당'의 범위를 약간 확장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 급여의 필요성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임금이 지나치게 낮은 일, 위험한 일,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일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급여는 빈곤해소만이 아니라 일자리의 질 개선에도 기여한다. 기본소득도 사회적 급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김은희 위원장이 속한 녹색당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몇 십 만 원 정도로 그 액수가 낮다. 이 수준의 기본소득으로는 사람들의 구매력을 조금 높이는 것 이상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녹색당이 주장하는 수준의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보다 국가가 교육, 돌봄, 의료 등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세금을 OECD 평균 수준으로 급격하게 올려도 (추가로)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기본소득 하나. 다른 건 다 안 하고 그거 하나를 해야 돼요."장지연 연구위원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먼 훗날에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전면적 기본소득을 논의하기에는 때가 이르다는 것이 그녀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