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왜 제주에 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영섭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평당 2000만 원을 훌쩍 넘어 서울 집값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노형동, 연동 등 특정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제주 동 지역 기준 평당 1000만 원 정도가 빌라와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매매·분양 하한선이다. 제주시에서 좀 더 벗어난 읍면 지역이라면 아직 800~900만 원대도 찾을 수 있긴 하다.
국민주택 규모인 25평에서 30평 정도의 공동주택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3억 원 내외의 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매매가 아닌 임대로 방향을 돌릴 경우 3억 원 내외 공동주택의 임대료는 평균 보증금 1000만 원에 년세(1년 월세를 한 번에 지불하는 금액) 900만 원 내외, 읍면 지역은 700~800만 원 선이다.
상가 임대료는 어떨까. 상권에 따라 천차만별인 권리금은 논외로 하더라도 15평 내외 신축 상가나 사무실의 임대료는 제주 동지역의 경우 보증금 1000만 원에 년세 1000만 원 내외이며, 읍면 지역의 경우 년세가 700~900만 원으로 조금 낮아지는 정도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예전처럼 서울의 전세집을 정리해서 제주에 집도 사고 가게도 얻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얘기다. 매매가와 임대료가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수도권 지역의 평균값에 근접한 현 상황을 생각하면 이제 제주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훨씬 치열한 고민과 옥석을 골라내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길을 가다 보면, 혹은 생활정보지나 제주 부동산 관련 카페를 보면, 초보 이주민들을 노리는 거품이 잔뜩 낀 매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제주시를 한참 벗어난 읍면 지역의 논밭 한가운데에 빌라 몇 동을 지어놓고 '한라산뷰 최상의 투자입지'라고 광고하며 평당 1000만 원 이상의 분양가를 책정한 경우가 있다. 제주도는 그 자체가 한라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한라산이 내다보이지 않는 집을 찾는 게 더 어렵다.
아무런 기반 인프라도 없는 산속에 공동주택과 상가를 지어놓고 그럴듯한 광고와 행사 개최로 거품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자칫 그 화려한 외관과 홍보에 깜빡 속아 입주를 결정하게 될 수도 있으나, 한 발 물러서 다시 생각해보면 주변에 아무런 인프라도 없는 데다 도대체 여기 누가 찾아올까 싶을 정도의 산 속에 집을 얻고 가게를 얻는다는 건 보통의 간담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서귀포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이 계속되고 있는 헬스·교육·관광 등을 중심으로 하는 특화 도시에 대한 투자도 이제는 신중해야 한다. 이미 호재가 모두 반영돼 매매가가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기에 이제 와서 뛰어드는 것은 늦은 감이 있을 뿐더러, 대부분 중국 자본을 기반으로 하고 기에 만에 하나 이들이 철수할 경우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