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창노고단을 찾은 임동창 선생께서 지리산자락의 숲을 스치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여리면서도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연의 섬세한 소리들이 연주란 형식을 통해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다.
정덕수
물은 물의 소리가, 바람엔 바람의 소리가 있듯 자연은 다양한 소리들이 끊임없이 합주를 한다. 물의 소리를 물의 소리답게, 바람의 소리를 바람의 소리답게 전달하고 들려줄 수 있는 분야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음악을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제법 많은 연주자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지만 공연장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최근 몇 분 인연된 분들의 초대로 소규모 공연이 아닌 말 그대로 전문 공연장에서의 공연, 정확하게 말하면 연주를 들을 기회도 가졌다.
1980년대 초까진 녹음이 가능한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며 라디오까지 들을 수 있던 제법 큰 재생도구를 사용해 영화음악이나 좋아하는 팝송을 들었다. 그리고 점차 소형화된 재생도구로 소형 헤드폰을 사용해 듣던 음악들은 탄노이 웨스트민스터(Tannoy Westminster) 스피커로 듣는 음악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면 미친놈 취급 받겠지만 실로 경이로웠다.
음악다방이 번성하던 1980년대 'JBL'이란 로고가 선명한 스피커를 통해 듣던 음악들도 실상은 시낭송 때문에 음악다방을 드나들게 되면서 익숙해졌다. 노래 한계령이 된 한계령에서를 1981년 10월에 썼으나 이를 처음 낭송한 때가 1983년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이때부터 음악다방에서 시낭송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몇몇 DJ 친구들이 자신들이 일하는 시간에 맞춰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시간 불렀다.
모든 부탁을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에서 주중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주말 저녁과 일요일 저녁시간에 맞춰 때로는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음악다방까지 달려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