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동에 위치한 선원 김상용의 집터임을 알리는 ‘백세청풍’ 각자바위
유영호
한편 육상궁이 위치한 이 일대는 조선 최대의 세도가문이었던 안동김씨의 일파인 장동김씨의 세거지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에게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라는 시조로 널리 알려진, 병자호란 당시 주전파 청음 김상헌이며 바로 이곳 무궁화공원에 이 일대가 그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한편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되자 자폭한 그의 친형 선원 김상용은 바로 옆 동네인 청운동에 거주하였다. 그리고 청운동에는 그의 집터였음을 알아 볼 수 있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고 새겨진 각자바위가 남아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역사인물 김삿갓, 김옥균, 김좌진 등이 모두 장동김씨이며 조선후기 왕비는 거의 장동김씨였다고 할 만큼 세도정치의 최대파벌이기도 했다.
1970년대 '안가'가 있던 곳한편 이 육상궁 남쪽으로 바로 아래는 또 다른 '현대판 후궁'들의 거처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평범한 공원으로 꾸며져 있지만 이곳은 1979년 10월 26일, 18년간 이어진 박정희 독재정권의 마지막 조총(弔銃)을 울린 '궁정동 안가'가 있던 곳이다. 김영삼 정부 때 이곳을 폐쇄하고 지금은 일반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잠시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획이 되었던 1979년 10월로 되돌아가 보자. 1960~1970년대는 밤의 정치로 알려진 요정정치가 극성을 부린 시기였다. 당시 청운각, 대원각, 삼청각, 오진암, 선운각 등이 그 위세를 크게 떨치고 있었다.
한일협상, 남북적십자회담, 7.4공동성명 등의 막후에 이곳 요정들이 존재했으며, 급기야 선운각 기생 정인숙이 한강변에서 피살된 사건은 아직도 미제로 남았다. 1965년 한일회담의 일본 측 대표였던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외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썼다.
3공화국 때 외무장관을 역임했던 이동원이 자신의 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고려원, 1992)에서 "아마 4공의 비밀을 궁정동이 간직하고 있다면, 3공의 비밀은 청운각의 기둥에 배어있지 않았나 싶다"고 기록했을 정도였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이처럼 당시의 요정은 단순히 권력가들의 성적 욕구만을 충족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이처럼 음주 가무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려졌을 수도 있다는 슬픈 상상까지 하게 된다.
이에 박정희는 부정부패척결을 강조하며 요정 정치 엄단을 강력히 지시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 또한 관제 비밀요정인 바로 이곳, 궁정동 안가였다. 박정희는 이곳에서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피살되었다.
이곳 궁정동 안가를 거쳐 간 여인들은 200명이 넘었으며, 당시 "대행사(측근 3~4명과 함께 즐기는 행사)는 월 2회, 소행사(대통령 혼자 즐기는 행사)는 월 8회 정도 치러졌다고 하니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처럼 권력자들의 음주가무 속에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슬픈 상상까지 하게 된다.
박근혜와 신은미, 역설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