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기도 시흥시 시화국가산업단지의 한 공장에서 사용 중인 메틸 알코올.
선대식
올해 1, 2월 삼성전자·LG전자의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의 파견노동자 4명이 시력을 잃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이번에 김씨와 전씨 등 2명의 추가 피해자가 확인됐다. 김씨가 지난해 2월 시력을 잃은 것을 감안하면, 이후 메탄올에 시력을 잃거나 다친 파견노동자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파견노동자들의 연이은 실명은 불법적인 파견노동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서 노동유연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파견노동이다. 기업들은 최저임금을 주고 채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파견노동의 확대를 요구했다. 노동계의 반대에도 정치권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만들어, 파견노동을 합법화했다.
파견법은 무분별한 파견노동의 확대를 막기 위해 제조업 직접공정에는 원칙적으로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체들은 불법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서지 않으면서, 불법파견이 널리 퍼졌다. 전씨는 "10년 전부터 인천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했다"라고 말했다.
제조업체들은 파견노동자를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위험물질 사용 여부를 알리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개인보호장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전씨는 "일하면서 알코올 냄새가 심하게 났다.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회사는 그게 메탄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회사에서는 1회용 마스크만 줬는데, 그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마스크를 직접 샀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사고 사실 숨기기에 급급... 사고 걸러내지 못한 정부사고가 일어난 뒤가 더 큰 문제였다. 파견노동자들이 쓰러져 시력을 잃었지만 회사는 책임지기는커녕 합의를 종용했다. 불법 파견인 탓이다.
전씨는 "회사에서는 산업재해 신청이 되지 않으니, 200만 원에 합의를 하자고 했다. 회사가 가족들에게까지 전화를 해서 큰 압박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씨를 돕고 있는 노동건강연대 소속 박혜영 노무사는 "노동건강연대 쪽으로 회사의 압박 전화가 온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사장이 제일 나쁘다. 사장은 제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원망스럽고 화가 많이 난다"라고 말했다.
회사가 사고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지만, 정부는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지난 1, 2월 파견노동자의 실명 이후 당시 고용노동부는 2, 3월 메탄올을 사용하는 업체 중 관리가 취약한 것으로 우려되는 사업장 3100여 곳에 대해 일제점검을 나섰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전씨와 김씨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사고가 발생한 업체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사람은 주변의 권유로 노동건강연대에 연락해서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사람은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난 후,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전씨는 "더 이상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남겼다. 김씨는 "다쳐보니까, (파견노동이) 위험한지 알았다"면서 "파견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선대식 기자의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1~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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