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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B잎새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도시'를 바라보고 살피는 눈길을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기만 할까요? 시골이란 "개발이 덜 된 곳"이기만 할까요? 시골이란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이기만 할까요? 그리고 도시는 참으로 "정치·경제·문화가 중심이 되는 곳"이기만 할까요?
뉘라서 촌사람들과 이른바 촌스러운 것들을 업신여길 수 있으랴. 이제라도 '촌스러움'의 미덕을 회복해야만 끝없는 욕망의 전쟁터가 된 우리의 삶터에 사람의 온기가 돌고, 온갖 개발의 삽날에 찢기고 망가지는 산천도 가까스로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촌이란 우리 모두의 태생지이자 지금도 우리의 목숨줄을 부지해 주는 생명의 곳간인 것이다. (29쪽)
황풍년 님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행성B잎새,2016)을 읽으면서 시골하고 도시 얼거리를 새삼스레 되새겨 봅니다. 황풍년 님은 <전라도닷컴> 대표를 맡으면서 전라도 이야기를 온나라에 고루 퍼뜨리는 일을 합니다. 잡지 이름처럼 <전라도닷컴>은 전라남·북도 이야기를 다루는데, 전라남·북도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도시가 아닌 시골 이야기를 다루어요.
남원이나 전주나 광주나 순천이나 여수나 광양이나 목포나 군산 같은 도시 이야기는 거의 안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룬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전라도닷컴>은 세 가지 이야기를 다루어요. 첫째, 흙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둘째, 물(냇물하고 바닷물)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셋째, 숲과 멧골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지요.
이처럼 오로지 시골 이야기만을 다루는 잡지가 바로 <전라도닷컴>이고, 시골에서 흙이랑 물이랑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정갈하게 갈무리해서 들려주려는 잡지가 <전라도닷컴>이에요. 황풍년 님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하는 책은 '전라도'라는 삶터를 놓고 쓴 이야기입니다만, 넓게 보면 '이 나라 시골'을 다루는 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남동떡 엄니의 손에 들린 오이는 잘쭉한 듯 둥그렇고 노리끼리한 빛이 영락없는 '물외'다. 비바람 무시로 들이치는 한데서 햇빛 달빛 쪼여가며 몸피를 불린 오이들도 시골 엄니들을 닮았나 보다. 엄니들은 오이를 한사코 '외'라 하고, 노란 참외와 구분해서 '물외'라 한다. (130쪽)전라도에서 살기에 전라도 이야기를 다루고 씁니다. 마땅한 노릇이에요. 경상도에서 산다면 경상도 이야기를 다루고 써야 마땅할 테고, 강원도에서 산다면 강원도 이야기를 다루고 써야 마땅할 테지요. 그리고 전라도에서는 전라말을 쓰고, 경상도에서는 경상말을 쓰며, 강원도에서는 강원말을 쓰겠지요.
황풍년 님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에서도 찬찬히 밝히는데, 시골사람이 쓰는 시골말은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집에서 시골마을을 이루고 시골살림을 지으면서 시골사랑이 고스란히 담아낸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책으로 배운 말이 아닌 시골말이에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말인 시골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시골사람이 먼먼 옛날부터 입과 몸과 손과 마음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이 시골말은 고장마다 다 다르면서도 비슷해요. 다 다른 대목은 소릿값하고 결하고 생김새가 달라요. 비슷한 대목은 어느 고장 어느 시골에서든 시골사람 스스로 모든 말을 새롭게 지어서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