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2014년 8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상명대학교 상명아트센터에서 열린 융복합 공연 '하루(One Day)'를 관람하기에 앞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차은택 공연 총연출자, 오른쪽은 사회자 허경환. 이 공연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연합뉴스
김홍탁 대표가 말한 또 다른 내용이 있다.
"차 감독이 돈 들어올 데가 있다고 했다. 그게 재단이라고 말했다." 이때가 2015년 3월께였다. 재단 구상은 그러니까 최소한 차은택이 창조경제추진단장이 되기 전 시점부터 존재했다는 얘기다. 요컨대, 차은택은 창조경제추진단장이 되기 전에 이미 '모스코스'와 '더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었고, 회사의 물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국책사업과 함께 '향후 설립될 재단'을 누군가와 구체적으로 의논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은택이 문화창조벤처단지에 대해 청와대와 미팅을 했다는 김홍탁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다른 국책 사업 전반에 대해 그리고 재단 설립과 그 이후 운영에 대해서도 차은택이 청와대와 의논했을 가능성이 당연히 크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로부터 몇 달 후인 7월, 청와대에서 재벌 총수들과 밥을 먹으며 미르재단 설립에 대한 의중을 전달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또, 그 후엔 베이징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만나 "한중을 하나의 문화 공동시장으로 만들고 세계 시장에 함께 진출하자"고 약속했다. 2000억 원짜리 펀드 조성 약속도 했다.
대통령은 그 후 리커창 총리의 10월 31일 방한에 맞춰 미르재단 설립을 점검했다. 10월 말 전경련과 대기업, 문체부의 그 난리법석의 원인은 이것이었다.
대통령이 중국 총리와 한 약속은 사실 다른 루트로 이행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문예진흥기금이 있다. 망상 수준에 가까운 얘기라 꺼려지지만 2000억 원짜리 펀드를 한국과 중국이 공동 조성하고, 그 핵심에 차은택이 서겠다는 구상? 그렇다면 대통령은 중국 총리를 만나서도 자기 사람 챙기기에 몰두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최초에 모은 770억 원 이외에도 앞으로 3~5년 동안 기업 등으로부터 추가로 400억 원가량을 더 모을 계획이었다. 대략 1000억 원대의 재단이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애초 박 대통령이 중국과 약속한 2000억 원짜리 펀드 공동조성 계획을 감안하면 두 재단의 모금 목표액이 그 절반이 되는 건 타당해 보인다.
2015년 5월~7월 : 문화창조벤처단지2015년 5월 1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엑스포가 열렸다. 그런데 준비가 한창이던 2014년 11월, 엑스포 소관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바뀐다. 김종덕 장관 취임 직후다. 예산도 대폭 늘었고, 무엇보다 차은택 감독 작품이 한국관에 설치된다. 이때 전시위탁대행사는 시공사였고, 한식관 운영은 한식재단이 했다.
2015년 3월에 한국관광공사가 원주로 옮기면서 서울 사옥을 새롭게 꾸미기로 한다. 한류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자는 이른바 'K스타일 허브' 구상이다. 사옥 전체를 신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미 전 해에 설계비 26억 원이 책정됐다.
그런데 느닷없이 계획이 바뀐다. 문체부는 사옥 신축 대신 건물 리모델링을 하기로 한다. 리모델링한 건물에 문화창조벤처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문화창조융합본부는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융·복합 문화 콘텐츠로 구체화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문화창조융합센터를 두는 데, 여기서 구체화된 콘텐츠는 문화창조벤처단지에서 사업화를 돕는다.
바로 이 문화창조벤처단지 조성 계획에 따라 7월에 예산이 171억 원으로 늘어난다. 애초보다 146억 원이나 많은 액수다. 이 돈을 문체부는 관광진흥기금에서 끌어온다. 문체부의 요청을 기재부는 하루 만에 승인했다. 관광진흥기금은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등 말 그대로 관광을 진흥하는 사업을 위해 조성된 돈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기재부는 승인했다.
늘어난 돈 가운데 80억 원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교부됐고, 문화창조벤처단지 조성에 쓰였다. 더민주 김병욱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차은택의 '소울메이트' 송성각이다. 문화창조벤처단지 올해 예산은 390억 원이다.
문화창조벤처단지에는 현재 9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지만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선정과정에서 차은택과 이래저래 관련 있는 업체가 주로 특혜를 얻었다는 소문도 있다.
2015년 9월 한식문화체험관문체부가 기재부로부터 관광진흥기금 145억 원을 새로 받아내고 두 달 후, 이번엔 새로운 20억 원을 또 요청한다. 역시 기재부는 하루 만에 승인한다. 명목은, K스타일 허브에 한식문화를 알리는 전용 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 계획은 '한식+다양한 한류문화 체험'이 콘셉트였다. 그러나 7월, 그러니까 K스타일 허브 구상에 문화창조벤처단지 계획이 추가되고, 한국관광공사 건물 관련 계획이 신축에서 리모델링으로 바뀔 즈음에 차은택의 외삼촌인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콘셉트 변경을 문체부에 직접 지시한다. 요지는 한식 단일 주제로 가라는 것. 이에 따라 9월에 문체부가 20억 원을 더 요청하고 기재부가 승인하게 된 것이다. 문체부는 이때 문화창조융합본부(본부장 차은택)에서 마련한 안을 근거로 예산 증액을 요청한다.
그 이후 밀라노 엑스포 주연 인물들이 그대로 재등장한다. 한국관광공사는 한식문화시설 조성 용역을 시공테크와 체결한다. 밀라노엑스포 전시위탁대행사다. 선정 심사에는 한식재단 사무총장이 참여했다.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운영 당사자가 한식재단이었다. 조성된 시설에 설치된 건 차은택의 작품이었다. 밀라노엑스포에 설치된 차은택의 작품이 재활용되었다. 애초에 이 구상이 차은택 본부장의 문화창조융합본부에서 나온 것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한식문화체험관은 차은택의 것이었다. 이게 2015년 9월의 이야기다.
2015년 10월 미르재단2015년 10월. 미르재단이 드디어 탄생한다.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 둘 다 재단 설립 허가증이 나오는 데 하루가 걸렸다. 보통 21일 넘게 걸리는 일이다. 미르재단이 만들어지던 작년 10월 25일~27일 3일간은 드라마틱했다. 세월호나 지진에 대한 정부 대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문체부와 전경련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경련은 이메일과 전화를 돌렸고, 재벌 계열사의 높으신 분들은 허겁지겁 출연증서와 법인인감을 들고 팔레스 호텔에 모였다. 무슨 동창 번개 모임도 아닌데 그렇게 느닷없이 사람들이 많이도 모였다. 돌아가는 꼴은 회합이라기 보단 '집합'이었다.
기업들이 헐레벌떡 움직이는 동안 정부도 바빴다. 문체부 담당 주무관은 신개념 출장 서비스를 선보였다. 법인설립허가가 통보도 되기 전에 등기 신청이 이뤄졌다. 그리고 등기가 완료되기 전에 현판식이 열렸다.
이 모든 과정에 대통령의 '점검'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관심사에 재벌그룹과 전경련이 군대 훈련병처럼 몰려다녔다. 기업들은 내부 규정도 어겨가며 돈을 냈고, 박병원 경총 회장 같은 사람도 포스코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재벌그룹을 부당하게 갈취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어이없는 건 또 있다. 차은택과 '형동생'하는 김성현이라는 사람이 미르 재단 사무실을 계약했다. 이 사람 직업은 그래픽디자이너다. 재단 사무실 임대 계약에 그다지 안 어울린다.
그로부터 딱 3일 후 차은택이 만들고 김홍탁이 대표였으며, 김성현이 이사로 참여했던 '모스코스'는 해산한다. 아마도 돈 벌이 통로를 '미르재단'으로 집중하기로 했을 터였다. 김성현은 나중에 미르재단의 사무부총장이 되어 억대 연봉을 받는다.
미르재단의 이사장부터 이사진 다수, 사무부총장 등이 전부 차은택 측근들로 채워졌다. 심지어 차은택 감독의 회사인 '아프리카 픽처스' 직원들 중 일부가 '더플레이그라운드'로 갔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또 미르재단으로 이동한다.
K스포츠재단은 나중에 이사장이 최순실의 지인 스포츠마사지센터장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공무원'이 아니라 '대통령과 친한 사람'들이 이행했다. 이럴 때 우리는 '비선실세'가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2016년 비선실세의 위용이후 '비선실세'의 위용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미 차은택과 최순실은 자신들의 위력을 수차례 선보인 바 있었다. 문체부의 문화창조벤처사업단지 및 한식문화전용 시설을 위한 예산 증액 요청을 기재부는 하루 만에 승인했다. 문체부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허가를 역시 하루 만에 내줬다. 기재부는 두 재단의 지정기부금 단체 승인을 서류 미비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켜줬다. 국민의당 박주현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다.
그 뿐인가? 한국관광공사는 기재부에서 예산 증액 승인이 나기 열흘 전에 서울사옥의 리모델링을 위한 설계용역 계약을 건축사사무소와 체결한다. 설계 용역 계약을 하고, 예산 신청을 하고, 기재부 승인을 받은 것이다. 보통은 예산 신청, 기재부 승인, 설계 용역 계약 순이 정상이다. 미르재단이 설립허가통보도 받기 전에 법인 등기 신청을 한 일의 재판이다.
차은택은 '허가'나 '승인' 따위는 하루 만에 해치운다. 허가나 승인이 나기 전에 할 수 없는 '계약'이나 '신청' 쯤을 역순으로 진행하는 기적도 행한다. 심지어 차은택 후임으로 왔던 여명숙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차은택 감독과 갈등이 생겨 한 달 만에 경질됐다. 그 어려운 일들을 차은택은 다 해냈다.
최순실의 드러난 위용은 딸, 정유연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대가 입학 규정을 바꾸고, 1년에 하루씩 밖에 학교에 나오지 않은 딸을 위해 학칙을 개정했다. 더민주 노웅래 안민석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다. 지도교수는 교체됐다. 대신 이대는 각종 정부 지원 사업을 석권한다.
대한승마협회는 삼성계열사가 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3일, 삼성이 10몇 억 원 하는 명마를 정유연에게 사주고, 독일에 승마장도 지원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승마협회는 수십억 지원 계획을 세웠다 철회했다. 승마협회의 요청으로 한국마사회는 한 감독을 독일 현지에 파견했다. '딸바보' 최순실에게 재벌도, 대학도, 승마협회도 모두 줄을 섰다. 모두 2015년부터 올해까지 벌어진 일이다.
2016년 5월 본격 돈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