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4월 4일 오전 기습철거당한 쌍용차 분향소 자리에 화단이 들어선 모습을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지부장이 바라보고 있다.
박소희
2013년 4월 4일 이른 새벽, 대한문 분향소에서 잠을 자던 저를 서울 중구청 공무원들과 경찰들이 끌어냈습니다. 300여 명의 경찰과 공무원들은 도로점용을 허가받지 않았다며 3명의 해고자가 지키고 있던 분향소를 철거했습니다. 집회신고를 한 곳이었습니다.
그 분향소를 철거하는 1시간 동안 중구청 복장을 한 남성 6명이 얼굴과 양팔, 양다리 그리고 등을 눌렀습니다. 저는 강제로 바닥에 눕혀졌습니다. 숨만 쉴 뿐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철거가 끝나가도록 온몸이 눌린 채로 계속 풀어달라는 요구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새벽에 느꼈던 무력감과 패배의 기억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저는 이렇게 참담하고 무력한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왕왕 생깁니다. 쌍용차 투쟁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써야 할 때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희미한 일이지만, 몇 년 전 집회에 참석하거나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기소를 당해 재판정에 서야 할 때도 괴로운 기억을 되짚어야 합니다.
지난 5일에도 재판이 하나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이뤄진 경찰의 무리한 공무집행에 항의한 것이 위법한지 따지는 재판이었습니다. 계속 추가 기소되고 병합돼 판사가 세 번이나 바뀌었던 재판입니다. 검사는 담담한 어조로 구형했습니다.
굴뚝 농성 했다고 3년, 집회를 방해하는 경찰에게 항의했다고 4개월, 막무가내로 캡사이신을 뿌려대는 경찰에게 저항했다고 1년, 천막 철거하려는 경찰에게 항의했다고 1년, 집회 참석하기 위해 온 시민들을 둘러싼 경찰들을 밀어내라고 이야기했다고 1년 6개월,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고 6개월, 그리고 그 모든 일에 맨 앞에서 싸웠던 지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1년 6개월의 구형을 선고했습니다. 검사의 기소 내용은 건조물 침입, 집시법 위반,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채워졌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쌍용차 해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목소리로 외친 구호는 쌍용차에 언제 쳐들어갈지 모른다는 의미로 바뀌었고, 불꽃놀이용 폭죽 소리는 총 맞을 것 같은 공포심을 자아냈다고 했습니다. 쌍용차에서 해고돼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하려고 해도 그 앞을 막고 서 있던 것은 늘 경찰의 방패였습니다. 면담요청서를 들고 있던 우리를 가로막는 방패를 흔들면 경찰은 캡사이신을 뿌려댔고 항의하면 연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