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를 바심하느라 부산한 마을 할머니. 조도 깨도 콩도 '바심'을 합니다.
최종규
'가을말'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 가을에 짓는 푸진 가을살림을 헤아리면서 우리가 오늘 새롭게 지을 가을말을 찬찬히 노래해 보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가을말을 그려 보고 싶어요. 가을에 피는 꽃은 '가을꽃'입니다. 가을에 피니 가을꽃일 뿐입니다.
한국말사전에는 '추화(秋花)'라는 한자말도 나오는데 구태여 '추화' 같은 낱말은 안 써도 된다고 느낍니다. 봄에 피는 꽃은 '봄꽃'일 테지요. 굳이 '춘화(春花)' 같은 말을 안 써도 됩니다. 꽃은 봄가을에만 피지 않기에 '여름꽃·겨울꽃'도 있을 텐데, 한국말사전에는 '여름꽃'이나 '겨울꽃'이라는 낱말이 아직 안 오릅니다. 안타깝습니다.
여름에 하는 일이라서 '여름일'이요, 가을에 하는 일이라서 '가을일·갈일'이에요. 시골에서는 여름이나 가을뿐 아니라 봄이나 겨울에도 똑같이 일을 합니다. '봄일·겨울일'이 따로 있지요. 그러나 한국말사전에는 '봄일'이나 '겨울일' 같은 낱말은 아직 안 실려요. 아리송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봄에는 '봄노래'요, 가을에는 '가을노래'입니다. 일할 적에는 '일노래'요, 놀이할 적에는 '놀이노래'예요. 들에서는 '들노래'이고, 밭에서는 '밭노래'예요. 숲이라면 '숲노래'요, 바다라면 '바다노래'일 테지요.
이처럼 우리 나름대로 부르는 노래는 언제나 노래이니, 홀가분하면서도 즐겁게 '-노래'를 뒷가지로 삼아서 쓰면 됩니다. 그래서 살림을 짓는 살림꾼은 '살림노래'를 부르고, 서로 아끼는 사랑님은 서로 '사랑노래'를 불러요. 글로 이야기를 나누는 벗님이라면 '글노래'나 '벗님노래'를 부르지요. 손전화 쪽글로 이야기를 나눌 적에도 '글노래'예요.
비록 오늘날에는 뚝 끊어진 노래이지만, 예부터 시골에서는 '시골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농요'가 아닌 '시골노래'입니다. '노동요'가 아닌 '일노래'이고, '동요'가 아닌 '놀이노래'나 '아이노래'예요. '민요'라고 하는 이름도 막상 여느 사람들로서는 안 쓰던 말이었으리라 느껴요. 여느 사람들은 '요(謠)'가 아닌 그냥 '노래'만 불렀을 테니까 말이지요.
한국말사전에서 '한가위'를 찾아보면 "= 추석(秋夕)"으로 풀이합니다. 이는 '한가위'보다 '추석'이라는 한자말을 쓰라고 하는 말풀이입니다. '추석(秋夕)'은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음력 팔월 보름날이다.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처럼 풀이해요.
아무래도 앞뒤가 바뀌었어요. 이 가을에 우리는 오롯이 기쁜 마음으로 가을말을 새롭게 지을 수 있을까요? 삶과 살림을 손수 지으며 말도 늘 손수 짓던 수수한 시골지기 마음을 이어받아 새롭게 아름다운 가을말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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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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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 내지 말고 '콩바심', '벼베기'도 한가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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