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선 :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과 화약무기를 개발 활용한 과학기술자. (간략 소개) 최무선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화약을 만들고 화약 무기를 개발한 고려 말의 장군이자 과학자이다. 그는 당시 첨단기술이었던 화약제조법을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자체 개발을 해냈으며,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무기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당시 최무선이 개발하고 제작한 화약과 무기는 왜구 격퇴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생애와 경력) 1325년 : 최동순의 아들로 경북 영천에서 출생 (본관 : 영천) 1376년 : 염초 제조법을 알아냄 1377년 :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 제조 및 각종 화약무기 연구 개발 착수 1380년 : 진포대첩에 부원수로서 참전, 화약 무기를 사용하여 왜선 500여 척을 격파 1389년 : <화약수련법>, <화포법>을 저술 1395년 : 4월 19일(음력)에 세상을 떠남
(주요 업적)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 개발고려 말기에 화약제조법은 오로지 중국만이 가진 첨단 군사기술이자 국가기밀이었다. 최무선은 중국인 기술자 이원에게서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 제조 핵심기술을 알아내고, 숱한 실험을 거쳐 염초를 흙에서 추출하는 데 성공해 마침내 화약 제조 기술을 완성했다. 화통도감을 세워 첨단 화약무기들을 연구 개발화약 개발에 성공한 후, 최무선은 화약과 화약무기 제조를 정부에 적극 건의하여 1377년 정부 공식기관인 화통도감을 발족시켰다. 이후 최무선의 주도로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 이장군, 화전, 주화 등 20여 가지의 각종 첨단 화약무기를 개발해냈다. 진포대첩에서 왜구와 싸워 승리고려 군대는 화통방사군이라는 화약무기 발사 전문부대를 편성하여 막강한 위력을 지니게 됐다. 1380년 왜구가 500여 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진포로 쳐들어오자, 최무선은 부원수로 참전하여 화약무기로 무장한 전함을 이끌고 나가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화약 제조법과 화포 제작기술을 책으로 편찬최무선은 자체 개발한 화약 제조법과 화포 제작기술을 <화약수련법>과 <화포법>으로 편찬했다. 이 책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그가 개발한 화약 제조법과 화포 제작기술은 아들 최해산에게 전수됐다. 최해산은 아버지의 기술을 계승 발전시켜 조선 초기에 각종 화약과 신무기를 개발했다.
승전 (1) 100척으로 500척의 왜구를 무찌른 진포대첩 1380년 8월 왜구는 500여 척의 전선을 이끌고 전라도 진포(현 충청남도 서천군)를 거점으로 삼아 내륙에 침입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최무선의 화기를 시험해 볼 만한 기회라며 최무선을 부원수로 임명해 참전토록 했다. 원수 나세를 필두로 심덕부沈德符와 최무선이 지휘하는 고려군의 수군은 왜선에 비해 5분의 1밖에 안 되는 군선 100여 척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왜군은 군선과 군선을 연결하여 거대한 해상기지를 형성하여 위협적인 전세를 펼쳤고, 고려수군은 이 시기 이전에는 왜선의 위세에 눌려 감히 근접할 엄두도 못 냈겠지만 화포로 무장한 덕에 초대형 선단을 향해 대규모 화포공격을 가해 곧 적선 500척을 모두 불살랐다. 왜군은 내륙으로 퇴각하였으나, 이를 추격한 이성계에게 지리산 일대에서 섬멸되었다. 진포대첩은 고려군이 자체 제작한 화기로 거둔 승리였고, 군선에 화포를 정착하여 최초로 함포공격이 감행된 해상전투였으며, 한 차원 높은 함포전술이 가미되어 고려가 해상방어를 적극화하는 새로운 변화를 이뤄냈다.
승전 (2) 관음포 앞바다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관음포대첩 고려 말인 1383년(우왕 9) 5월 정지의 함대가 남해현(경남 남해군) 관음포 앞바다에 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남해 대첩'이라고도 한다. 3년전인 1380년 진포에서 왜선 500척이 격침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왜구는 120척의 군선을 이끌고 침입해 앞서 합포(마산)를 공격하였다. 급보를 받은 해도원수海道元帥 정지는 나주의 목포에서 전선 47척을 이끌고 경상도로 급히 나아갔고, 왜구는 정예병 군사 140명씩을 배치한 큰 군선 20척을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 정지는 앞서서 공격하는 배를 격침시킨 다음 화포를 사용하여 그 가운데 17척을 대파하였다. 당시 고려군의 화포를 운영하는 책임자는 최무선 이었는데, 움직이고 있는 적선에 화포를 정확하게 적중시킨 진정한 해전이었다. 이 싸움은 승리를 거둔 뒤에 정지가 "내가 일찍이 왜적을 많이 격파하였으나 오늘같이 통쾌한 적은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왜선을 철저히 격파한 해전이었다. 관음포대첩은 왜구들이 고려 수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고 세계 해전사 처음으로 함포로 적을 물리친 전투라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 전투는 최영의 홍산대첩, 나세 등의 진포대첩, 이성계의 화상대첩과 함께 왜구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킨 승전이었으며, 관음포대첩으로 자신감을 가진 고려군은 대마도정벌을 추진하였다.
최무선 과학관 내부 1층 (1) 복제 유물 전시 공간 -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를 토대로 조선 시대로 이어온 천, 지, 현, 황자총통을 복원하여 전시. 가정을묘천자총통(보물 647호) : 1425년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해상전에서 사용되었다. 총길이 1.31m 포구 지름 12.8cm로 우리나라 화포 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화기이다. 지자총통(보물 862호) : 대형총통 중 두 번째로 큰 우리나라 고유의 화포로, 천자총통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에는 판옥선이나 거북선에서 주포로 사용되었다. 현자총통 :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133척의 일본 전함을 격파시켰다. 조선 시대 사용된 징거리 화포 중 하나로 화살은 차대전을 사용하였으며, 사정거리가 2,000보(약 2.5km)로 가장 길다. 별황자총통 : 황자총통을 개량한 조선 중기의 총통으로 천·지 ·현 ·자 총통에 비하여 작지만 이동이 편리한 총통이다. 약통 뒤에 손잡이가 붙어 있고 총통의 중심 근처에 포이砲耳가 붙어 있는 것이 황자총통과 다르다. 대장군전 : 조선 시대 무기의 하나로 화살을 개량한 것으로, 천차총통으로 발사하면 900보(약 1.1km)를 날아감 장군전 : 지자총통으로 발사하는 화살로 순 쇠붙이로 만들었으며, 발사 거리는 2,000보(약 2,5km) 차대전 : 현자총통을 이용해 발사한 화살로 나무로 만들었으며 철로 된 깃翎을 달았음. 시대에 따라 길이나 둘레의 수치에 차이가 있음 피령차중전 : 황자총통의 탄환으로 사정거리는 1,100보(약 1.4km) 삼총통 :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 사용하던 화약 병기로 발사물로는 차중전을 사용하였으며 사정거리는 800보(640m)에 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층 (2) 기획전시실 - 최무선장군이 연구하고 개발한 화약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기본적인 지식을 그래픽패널로 간략히 설명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공간. <화약의 역사> 인류의 문명은 불의 발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불보다 더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한 도전을 거듭해 왔다. 이에, 스스로 타오를 수 있는 물질, 엄청난 속도로 광음을 내며 폭발하는 불, 즉 화약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인류 최초의 화약은 유황이나 석유, 목탄 등의 혼합물을 배합하여 만든 것으로 그저 '강한 불' 정도였고 이것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사용한 곳은 별로 없었다. 이 강한 불이 오늘날의 흑색화약으로 발전되면서 이를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함에 따라 비로소 전쟁용 무기로, 또 산업용으로 발전하여 지금까지 그 역사가 이어져 오고 있다. <불로불사의 단약과 화약> (3세기, 중국) 서양에 연금술이 있었다면, 중국 도가에는 연단술이 있었다. 불로불사를 위해 단약丹藥 연구에 몰두하던 중국의 연단술사들이 초석에 목탄과 유황을 섞어 강력한 불꽃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위) 위백양이 저술한 서계 최고의 연단술서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서 초기 연단술을 엿볼 수 있으며, 3세기 무렵 갈홍이 지은 불로장수 비법서 <포박자抱朴子>에는 단약 제조에 초석과 유황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중국의 도가 경전인 <도장경道藏經>에는 '불'로 만든 '약'이라 하여 '화약火藥'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주술적 행사에서 비롯된 불꽃놀이> (7세기 이후, 중국) 불꽃놀이Fireworks는 7세기 초 수나라 양제 시절부터 시작되었는데, 대나무를 태울 대 마디마디가 소리를 내며 터지는 것을 보고 '폭죽爆竹(Firecracker)'이라 하다가 이후 불꽃놀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후 당나라 때 비로소 '화수은화'라고 하는 아름다운 모양의 불꽃놀이로 발전한다, 잡귀를 쫓으려는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불꽃놀이는 차츰 화약의 아름다운 불꽃과 소리에 매료되어 점차 기술이 발전되었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에서 전해진 불꽃놀이는 유럽전역으로 퍼지면서 궁정의 축제와 승전 축하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흑색화약의 등장> (13세기, 유럽) 초석, 황, 목탄(숯)의 혼합물을 '흑색화약'이라고 이름 붙인 이는 바로 로저 베이컨이다, 그는 고대 전설 속 '그리스의 불' 재현을 하려는 연구 끝에 흑색화약을 만들어 낸 후, 자신의 연구 기록을 남겼다. 이때, 베이컨은 화약이 사악한 목적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라틴어 철자를 바꿔 수수께끼처럼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14세기 초 독일의 슈바르츠가 베이컨의 기록을 판독함으로써 유럽의 흑색화약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고, 그 후 유럽에서는 각종 화약무기의 제조가 성행하였다. 새롭게 등장한 화약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변화시켰으며, 봉건제도를 몰락시키고 근대화를 앞당기는 촉매가 되었다.
1층 (3) 시청각실 - 시청각실에서 상영되는 영상은 최무선장군의 화약개발에 대한 의지와 화통대감을 통한 화약무기를 바탕으로 위대한 승리를 이끌었던 세계 최초의 함전해전인 진포대첩에 대해 다룬 3D 그래픽 애니매이션(5분 상영)이다.
2층 (1) 계단실 - 과학자들의 얼굴 부조와 간략한 소개가 계단 벽에 전시되어 있다. 인물들의 이름을 나열해보면- 최무선, 이천, 장영실, 세종대왕, 이순지, 허준, 홍대용, 서호수, 김정호, 김점동, 이원철, 윤일선, 우장춘, 조백현, 이태규, 안동혁, 김동일, 석주명, 장기려, 현신규, 최형섭, 김순경, 김재근, 이임학, 조순탁, 허문회, 이호왕, 이휘소
2층 (2) 상설전시실 - 최무선의 화약개발의 과정과 과학자로서의 위대함을 설명하고 화약개발로 인해 우리나라의 무기과학역사에 어떠한 발전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는 공간으로 실물모형의 전시 공간이다. '불꽃에 품은 꿈', '최무선의 생애와 화약연대기', '여말선초 화약병기의 과학성', '신기한 과학 테이블', '최무선의 업적', '고려후기 대외항쟁', '대형화포와 해전술의 과학', '미래를 여는 전통과학' 등의 게시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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