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갈무리.
금성출판사
평생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에게 반기문은 그야말로 '한국인의 이데아(이상 모델)'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부터가 반기문을 생존 인물임에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소개해왔다. 2013년 한양대 경제학부 김재원 교수가 실시한 '대학생이 가장 닮고 싶은 인물' 설문에서도 반기문은 김연아와 1위를 차지했고, 2011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실시한 '직장인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멘토' 설문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1위는 안철수였다).
가난한 유년 시절, 하지만 한 번도 놓치지 않은 1등,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성격, 지역 갈등에서 한 발 떨어진 충청도 출신, 서울대 출신, 외무고시 합격, 장관도 모자라 세계 경쟁 무대로 뻗어나가 유엔 사무총장 역임, 외교전문가의 노련한 처세술, 이제는 유력한 대권주자. 부정할 수 없는 자수성가형 완전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휘황찬란한 스펙들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반기문은 개인 노력으로 유엔 사무총장까지 출세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실만으로 그가 대통령직 적임자라는 어떠한 가치판단도 정당성도 이끌어낼 수 없다. 장관, 유엔 사무총장, 대통령직은 성실성의 대가로 보상받는 아이템 같은 것이 아니다. 이미 고민됐어야 할 것은 노력 자체가 아니라 노력의 '성격과 방향'이다. 또한 그가 유엔 사무총장이었다는 사실보다 어떤 유엔 사무총장이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관련 기사:
어디에도 없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직은 전 세계에서 딱 하나뿐이다. 유엔 사무총장직만큼은 아니지만 모든 일자리는 전체 '파이'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 조건은 개인의 자기계발만으로는 못 바꾼다. 또한, 1980년대에 재산에서 증여나 상속이 차지하는 비율이 27%였다면 2000년대는 42%로 증가했다. 현재 한국의 부(富)는 소득 상위 1%가 25.9%, 상위 10%가 66%를 독점하지만 하위 50%는 2%에 그친다. 2015년 서울대 정시모집 신입생 52.2%는 강남 3구 출신이다. 개인 노력만으로 한계에 부치는 주변 환경, 구조적 불평등은 엄연히 존재한다.
반기문에게는 이런 맥락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시대착오적이다. 반기문은 이미 권력욕은 몰라도 출세욕은 확실했고, 기존의 한국 사회의 신기루도 충실히 유지해왔다. 반기문이 화려한 스펙에 비해 새롭지 않은 대권 주자인 이유다. '반기문 모델'이 위험한 것은 그 자신 때문이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구조적 모순을 직시 않고, 자꾸 극소수의 성공신화로 도피하는 한국사회의 '기름장어' 같은 습성이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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